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람의 생각이 원숙해지거나 깊어진다는 것을 사실은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겪었던 것 만큼이나 겪지 않았던 것에 대한 중요함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들은 삶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하는데에 도움을 주지만 또 다른 어떤 경험들은 시야를 편협하게 하거나 누적된 편향을 가속화할 뿐이다. 사람의 일대기는 대체로 어릴적부터 나이든 순서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경우가 많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이를 거꾸로 읽기를 바란다. 지금 시점에서 채워진 것들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을 때의 열망과 그리움, 좌절, 그리고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순수함이 읽히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을 때에도, 기록을 훑을 때에도, 지금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에 어떤 부분이 채워진 것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넘어갈지를 상상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올 때에 무언가 채워진 것이 있다면 그만큼 잃어버린 것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현재에서 과거를 살펴볼 때에도 무언가 놓친 것이 있다면 새롭게 보이는 여백의 감상들이 있을 것이다. 기회비용을 다시 탐색하는 과정이라고도, 아니면 그 시간 대에 덩그러니 놓아둔 빛 바랜 열망을 다시 채색하는 작업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표현은 아무래도 좋다. 얻는 게 있었으면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이 있을 것이라는 - 단순한 균형을 믿고 있는 것뿐이니까.
애초에 좌표계에 따라 성장의 방향 감각이 변하기도 하거니와,
성장이 항상 시간을 따라 걷는 것도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