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eji, Japan, Jan. 2017, Nexus 5x
역광과 나무의 조합을 좋아한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실은 나무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나무의뿌리를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 상상할 수 있다. 나무의 그림자는 흡사 뿌리를 닮아서 땅을 단단히 버티고 서있는 느낌을 주곤 한다. 하지만.
해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는 바뀐다. 뿌리는 그렇지 못하기에 그림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지면에 노출된 뿌리의 운명은 이런 것이다. 실제로 뿌리가 노출되면 뿌리는 제기능을 할 수 없다. 그림자로 뿌리를 상상하지만, 사실 그림자는 뿌리가 아니다.
그림자는 뿌리이거나 뿌리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드는 비유들은 가끔 본질을 가린다. 비유를 더듬어가며 본질을 파악하다보면, 어느새 비유가 본질을 잠식하는 경우가 생긴다. 뿌리는 뿌리인 것이고, 그림자는 그림자인 것이다. 현상을 현상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수많은 지식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비유는 이러한 지난한 작업들을 좀 더 쉽게 건너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유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허나, 무얼 쉽게 건너뛰고 있는지는 한번쯤 되돌아봐야 한다.
이 대나무들은 숲을 이루고 있는가. 숲인 것인가. 아닌것인가. 어떤 사람은 숲이 아니라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숲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비유에 따라서, 숲으로 바라보아도 되고 그렇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숲인지 아닌지 정말로 살펴보고 싶다면, 우선 숲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와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메타적 사고와 잇닿아있다.
각자의 시선이 있다. 비유와 비유가 아닌 것 사이에서 현상을 파악하곤 한다. 하지만 한번쯤, 우리가 흔히 쓰는 비유가 오히려 우리의 사고에 대해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