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가치'보다 '활동의 가격' 글 타래
1부: 서두
2부: 활동의 가치와 폴라니
3부: 생각의 가격:어쩌면 정말로 흔한 것
4부: 상전이
스팀잇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상, 어떠한 글은 스팀잇 자체를 이야기하는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하나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면 결국 터전 자체를 돌아보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나, 대체로 내가 스팀잇에 관해서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니기에, 스팀잇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라면, steemit 단어를 적기로 한다. 스팀잇을 사용하게 되면서 드는 생각들을 종종 적어나갈 예정이다.
우선 이번에는 '생각의 가치'보다 '활동의 가격'이라는 주제를 잡아보았다. 아마도 4부작이 될 예정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시리즈로 적으려니 뭔가 어색하다.)
처음 스팀잇에 가입하고 스팀잇을 시작하면서, 눈에 띄던 단어는 바로 '생각의 가치'였다. 그러니까 괜찮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잘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였으리라. 그래서 처음에는 어떠한 생각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 그 생각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모두들 자신의 생각의 결과물에 관해서 가치를 가진다고 믿고, 그에 대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게 될 지 궁금해하다보니, 특히나 내가 생산한 컨텐츠에 대해서 얼마의 가격으로 환산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가치가 곧 가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서, 가격을 가치로 생각하다보면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다. 사실 가치는 가격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가치=가격 이라는 등식은 상당히 많은 요소들을 가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항상 가치 만은 아닐 것이다. 누가 보아도 상당히 좋은 컨텐츠를 생산하는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을 감화시킬 '가치'가 존재하기에, 다른 요소들을 무시하더라도 가치가 결국 가격을 끌어올리는 힘이 되지만, 냉정히 이야기하자면 사실 누가 보아도 상당히 좋은 콘텐츠란 그렇게 쉽게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나는 여기에 올려지는 글들이, 일종의 가판대에 올려져 있는 느낌이 든다. 다만 기존의 가판대 개념과는 다소 다르기도 하다. 기존의 가판대가 돈을 지불해야 컨텐츠를 볼 수 있는 구조였다면, 이 곳의 가판대는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컨텐츠를 볼 수 있다. 다만,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해보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그리 높지 않다면 (혹은 생산하는 품에 비해서 보상이 자신이 생각한 수준이 이르지 못한다면) 더이상의 컨텐츠 생산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이익이나 보상이 단순히 금전적으로 환산될 수 있는 수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러한 수치에 초연하다면 애초에 모든 글을 '보상 거절'을 놓고 쓰면 될 일이다. 그러니 글이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다소 묘한 의미가 있다. 내가 작성한 컨텐츠의 가치를 수치로 확인하고 가시적인 보상을 얻는다. 바로미터 같은 것이다.
내가 생산한 컨텐츠는 과연 얼마를 받아야 합당한가. 당신이 생산한 컨텐츠의 가격은 과연 얼마로 매길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이러한 문제를 '가치'의 관점으로 살펴보면, 역시나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는 있다.
가치는 각 개인별로 주관적으로 느낀다. 그 것은 나의 컨텐츠에도, 당신의 컨텐츠에도 해당된다. 각자 느끼는 가치의 크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어떠한 컨텐츠를 접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감동을 받은 컨텐츠라고 할지라도, 나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아무런 느낌이나 의미가 없다면, 그 가치는 0에 수렴할 것이다.
가격은 집단적인 수렴의 결과이다. 각 개인이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각자 부여하는 가격에 대한 감을 잡는다. 그리고 한 컨텐츠에 이러한 가격의 총합이 모인다. 비슷한 컨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각자가 해당 컨텐츠에 느끼는 적정한 가격의 수준이 낮아질 수도 있다.
사실 이 관점은 상당히 단순한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서 더 나아간 것이 없다.) 논의를 깊게 나아가려면, 스팀잇의 불편한 UX가 어떻게 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키는지, 공유경제/공공선택에서 정치적 결정과 경제적 결정이 어떻게 차이나는지를 같이 살펴봐야하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부분은 우선 넘어가기로 한다.
나는 이러한 가치와 가격의 차이점이 결국 우리가 스팀잇에서의 '활동'을 바라보고 실제로 직접 '활동'하는 데에, 일종의 괴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각'과 '활동'의 차이점도 이러한 괴리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일전에 나는 이 글에서 아래와 같이 살짝 언급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결국 창작이든 투자든 자신의 존재 방식을 인정받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그 두 개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팀잇을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할 것을 기대하는가? 취미부터 일 사이의 스펙트럼에서, 창작에서 투자 사이의 스펙트럼에서,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활동 사이의 스펙트럼에서 다양한 생각과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여러 입지와 가치가 분포하는 n차원의 공간에서 살고 있고, 사실 이러한 n은 2,3 정도의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은 3 이상을 상상하기는 어려워서, 현상을 해석할 때 어떠한 공간을 작은 공간으로 투영시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수하게 분포된 가치와 방향들 중에, (스팀잇과 관련된 혹은 스팀잇을 통한) 생각과 창작과 활동에 관해 한번쯤 고민을 해보기로 한다. 특히나 "생각의 가치"라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에 대해서.
사실 창작은 활동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특히나 스팀잇에서 흔히들 접하는 모토인 '생각의 가치'에서의 생각은, 우리가 가지는 활동의 개념을 '창작'으로 협소하게 고착시킬 여지가 있다. 물론 당연히 창작은 스팀잇을 굴러가게 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는 고민한다. 더 나은 컨텐츠를, 더 나은 창작을, 더 나은 참신함을. 하지만 이러한 구호는 일종의 주문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생산된 컨텐츠를 가판대에 쌓아놓는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아무런 피드백이 오지 않는다면 이는 이미 죽은 컨텐츠나 다름 없다. 특히나 스팀잇에서는 그렇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컨텐츠가 - 더 넓은 의미에서 활동이 -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기꺼이 당신의 노고에 지불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의 가치보다 '활동'의 가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의 가치라는 그 '생각'으로 인해 세계의 일부분만을 취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의 가치'보다 '활동의 가격' 글 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