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두서없는 글이 될 예정이다.
왜냐하면 이번 글은 여러 시간과 공간에서 틈틈히, 그리고 꾸준히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체로 글을 한번에 작성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여러번에 나누어 작성하다보면 그 때마다 드는 상념들의 불연속적인 부분을 어떻게 이어붙일지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은 그냥 놓아두기로 한다.
이른바 작가의 폐색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여진 이 상태는, 글쓰기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창작할 수 없거나 창작의 능력이 저하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사실 이와 관련하여 하나 재미있는 1장 짜리 기념비적인(?) 논문이 있는데, 글쓰는자의 폐색을 자가 치료하기 위한 시도의 실패에 관한 논문이다. (...)
심지어 이 논문은 Journal of applied behavior analysis 라는 저널에도 실린 논문이다. 알만한 사람은 아실 논문이라고 생각한다. 출간된 가장 짦은 논문이기도 하고. 살펴보면 리뷰어의 코멘트가 상당히 재미있는데, 레몬 주스를 흘려보거나 X-ray를 투과시켜 봤지만, 아무런 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리비전도 없이 승인을 받다니...) 논문 본문에 꿈뻑이고 있는 여백은 결국 글쓰는자의 고뇌를 반영하는 것일테다.
모든 일상이 자극과 창작적인 소재들로 가득한 것은 아니어서, 전형적인 소재에 전형적인 기록을 남길 때가 있다. 모든 일상은 비범해야하는가? 라고 생각해본다면 그건 아니면서도, 그것이 의미없는 단어들의 나열이 되지 않기 위해, 일반적인 무언가를 도출해내야할 때가 있다. 의미를 쥐어짜면 무언가 의미는 나온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들이 스스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일상도 존재한다. 이걸 인정하기 어려우면, 글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고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당장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하여, 나중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렇다는 통찰을 얻을 때가 있다.
무(無)에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이 그리 쉬운가. 나에게 글쓰기란 내가 겪은 일상을 압축적으로 조리하여 다시 요리로 내놓는 듯한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이 주 재료인 것이다. 사실 마음을 약간 내려놓으면, 글을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같은 소재나 주제에 대한 (전형적인) 무수한 변주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생산된 글들이 기억에 오래 남을 글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록으로서의 가치는 존중하지만, 그러한 기록들이 중복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상황의 변화나 시선의 성장을 반영할 수 있다면, 이는 스스로 가지는 역사의 기록이 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소재가 없으면 없는대로 남겨두어도 괜찮다.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지, 우리가 일상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건 여담인데, 상당히 짦은 초록(abstract)을 가진 논문을 찾는다면 아래 논문을 보라.
Can apparent superluminal neutrino speeds be explained as a quantum weak measurement?
초록(abstract): Probably not.
아주 명확해서 마음에 든다. 패기 넘치지 아니한가.
초록이라고 해서 항상 3-5 개 정도의 문단들로 구성하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굳이 적지 않아도 되는 것을 적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사실, 스팀잇에서 대체로 강조되는 '꾸준함'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꾸준해야 더 좋을수도 있겠지만, 꾸준함이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 꾸준함이 뭔가 꾸역구역 생산해내야만 하는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꾸준하게 '무얼 하는지'가 오히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것이 글쓰기라면, 종종 곤란할 때가 있다. 사실 하루의 일상이 항상 하나의 글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평탄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두 세 개 정도의 글을 적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날은 하나의 글을 채우기도 급급할 정도의 단조로운 반복이 지나가곤 한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페이지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에 무조건 한페이지가 담길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한문장으로 요악되는 날이, 또 다른 어떤 날은 두서없이 적어내리는 날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꾸준히 일상을 살고 있지, 일상을 생산해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꾸준함' 이라는 것은 꾸준히 존재한다는 것이지 항상 꾸준히 적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꾸준히 적음으로써 꾸준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할 것이다. 허나, 꾸준히 존재하는 것은 꾸준히 적는 것, 이 한가지로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꾸준히 존재하는 것은 꾸준히 적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조금은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히지 않아도 되는 문장들이 오히려 삶과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우리는 언제 어디선가 연유(緣由) 없이 나타났다가, 언제 어디론가 연유 없이 사라질 것. 가끔 새벽에 시계를 바라보며 아직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한편으론 잠들지 않고 사는 삶을 바라볼 때가 있다. 내가 잠이 드는 사이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눈을 뜨고 일상을 지내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기절한 듯 몇 시간을 내내 누워 있으며 놓쳐버린 순간들이 아쉬워서. 하지만 불면의 삶은 가능하지 않으며, 폐색과 같은 시간이 존재해야 나머지의 일상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나아가고, 비록 한 문장일지라도 조금이나마 끄적거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제나 일상의 밀도, 밀도의 출렁거림이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