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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홍위병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쩝... 앞서 다섯 편이나 써놓고도 아직 본격 시작이 아닙니다), 정리해 드려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산체제에서의 ‘언론’이라는 것. 또 하나는 ‘홍위병들의 신분’입니다.
얼마전에 시진핑이 사실상 종신집권의 문을 열었죠. 그리고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의 매체들은 일제히 찬양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이걸 우리식 언론관으로 바라보시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중국인들이 저렇게 찬양하니 좋은 일 아니냐면서.
문화대혁명 내내 인민일보 사설을 보시면 생각이 좀 달라지실 겁니다. 문화대혁명의 시작도 인민일보의 사설로부터 출발합니다. 1966년 6월 1일, 인민일보에 실린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는 사설 말입니다. 즉, 공산당 일당 체제로 굴러가는 국가에선 ‘여론’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당의 입장과 지시가 있는거죠.
이게 얼마나 얼마나 꼼꼼하냐면요... 2003년 9월 15일 ~ 2004년 3월 23일 사이에 방영된 한국의 드라마 한 편이 중국 전역에서 대박을 칩니다. 드라마 ‘대장금’입니다.
한류 갖고 중국 가서 뭐 하시려는 분들이 처음 깨닫게 되는건 ‘중국은 한 국가 단위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컨텐츠든 ‘한 개의 성’을 단위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대박이 난다고 하더라도 다른 ‘성’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좀 드문 편이었어요. 그런데 호남위성TV에서 대장금을 방영했는데 이게 전국 히트를 친거죠.
자기네들이 못하는 걸 남의 나라 드라마가 하니까 미디어쪽 학자들이 달라붙어서 드라마를 정말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그리곤 ‘중국 공산당’에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의상이 화려해야 하며, 드라마의 플롯이 어떠해야 하며, 전개 과정에서 어떤 요소가 들어가야 시청자들이 반응한다는 겁나 꼼꼼한 보고서였습니다.
음... 좀 이상하다는 생각 안드세요? 아니 뭐 드라마 흥행 요소 분석을 하는건 좋은데... 왜 당에 보고를 하죠? 왜긴요. 미디어 타고 나오는 건 당에서 다 통제하기 때문이죠. 1987의 한 장면 기억하시나요? 뭐는 보도하지 말라, 뭐는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이 신문사 칠판에 있던 거.
넵. 이 장면입니다.
이것보다 훨씬 더 꼼꼼한 형태로 통제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거, 당 선전국에서 관리합니다. 2월에 방남했던 김여정의 보직이 조선노동당 선전부 부부장이죠? 넵. 이거 관리하시는 분입니다. 김정은이 엄마가 같은 자기 동생에게 이 일을 맡긴다는 것은 공산당이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죠.
이건 중국 공산당 당 조직도 입니다. 선전부의 위치를 보십쇼... 아주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간 한국분들이 이걸 ‘여론’이라고 착각해서 현지 체제에 대해 무비판적이 되는 거,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다음 회부터 이야기할 홍위병 이야기에선 인민일보에 어떤 사설이 실리자 홍위병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나올 겁니다. 선전부는 통제만 하는게 아닙니다. 창작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황당한 일들도 벌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1963년 3월, 마오쩌둥은 국민을 봉사하는데 일생을 바친 젊은 군인 레이펑을 본 받으라고 지시합니다.
이 레이펑이라는 군인은 쓰러진 전신주에 깔려 스물 한 살의 나이로 죽은 군인이었는데, 그가 쓴 일기가 책으로 출판되거든요. 그의 일기에선 마오쩌둥 주석의 정치적 말씀들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지를 기록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레이펑이 당 선전부에서 만든 가공의 인물이었다는 뭐 그런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었죠.
두 번째는 홍위병들의 신분입니다. 일반적으론 학생들이었다고 이해합니다. 근데 그거 아닙니다. 이들은 혁명 1세대 집안 출신들 중에서 마오쩌둥이 제거하려고 했던 이들 이외의 집단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른바 ‘당성 좋은 어린 학생들’이었던 거죠. 이 아이들이 “마오 주석을 따르자”라고 나섰을때 부모들의 반응이 ‘노 혁명가를 그렇게 하면 안된다’라고 하는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줄을 어디에 설지를 고민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