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다운받아 프린트한 후 책상 앞에 놓았습니다.
일찍이 고인이 된 분임에도 누구인지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약 2년 간 국내외를 다니며 선생에 대한 서면사료를 수집하고, 친인척들의 구술사료들을 녹취하여 종합 정리하면서 나름 깨달은 바가 있어 여러분들과 공감하고자 합니다.
사실 선생을 알게 된 것은 참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본래 이 분을 연구하고자 한 것은 아니였는데 그가 중국에서 유학했다는 사실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항일독립운동가들처럼 진두지휘를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가진 '중국어' 재능으로 때로는 묵묵히 조력하였고, 때로는 공개적으로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 계몽운동을 진행했다는 사실에 관심이 생겨 그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찾아보았습니다.
내 손에 쥔 것이 없으면 두려울 게 없겠지만 내 손에 쥔 것이 많으면 두려워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라고 하던가요?
일제강점기 당시 내놓으라하는 집에서 소위 엄친아로 태어난 선생은 일찍이 10대 시절 중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근대화를 맞이하는 중국에서 신문화와 신문물을 자연스레 습득했겠지요...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해 습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 법한 항일동일운동가가 어려움이 처할 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귀국 후에도 중국어교육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감히 사용할 수 없었던 '독립'과 '자유', 그리고 '민족'의 단어들을 과감하게 사용하며 당시 '금서(禁書)'였던 책을 번역함으로써 무지했던 우리 민족들을 깨우치고자 했습니다.
그런 선생을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하였고, 어느날 갑자기 요절하게 됩니다.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말이지요...
한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된 연구가 단순한 연구로 그치지 않고 비록 5천만 명 중 일개 한 사람이지만 제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 그 분을 위해, 그리고 더 많은 후대들과 공감하기 위해 선생을 항일독립유공자로 신청하고자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분명 개인의 성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한 21세기의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어 학습에 매진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20세기 초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국가의 독립'을 위해 외국어를 배웠다는 사실은 우리가 후대로서 한번즈음은 꼭 알고 지나가야 한다고 생각해봅니다.
단순한 암기과목으로서 역사를 배우지 않고, 일부 몰지각한 지배층들의 잘못으로 국가와 태극기의 이미지가 변질되지 않도록 다음주 화요일 72주년을 맞이하는 8월 15일 광복절에는 두 아들녀석들과 함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역사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참고글 : '6.25전쟁'을 아이에게 건네주다.
(https://steemit.com/kr-newbie/@remnant39/6-25-2017624t23272226z)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과거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데 있다."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의 명언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