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도쿄에서의 일이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마일리지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만으로 별생각 없이 떠나온 여행이었는데, 다니다 보니 욕심이 생겨 첫날부터 미션 클리어하듯 도시 곳곳을 쏘다녔고, 이틀 만에 이 도시가 나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간과의 '합'이라는 것을 믿는데, 도쿄가 가진 에너지가 나를 외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주쿠 거리를 걸으며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말도 안 되는 제목으로 번역된 영화 'lost in traslation' 속 빌 머레이를 떠올렸다. 혼자인 것을 좋아하지만 모두가 혼자인 이 도시에서는 혼자라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창 밖에 시커먼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새라면 정말 질색이다. 바퀴벌레만큼이나 싫다. 귀여운 펭귄도 새인데 '세상의 모든 새'를 싫어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조금 머뭇거리게 되지만, 막상 펭귄을 실제로 보면 무섭다고 느낄 것 같다. 새의 눈을 보면 오싹해진다. 부리와 발과 깃털 역시 정말이지 징그럽다. 새의 발에 대한 혐오는 할머니가 즐겨 드시던 닭발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새가 땅 위를 걷고 있을 때나, 고개를 돌릴 때 어딘가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특유의 움직임,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무엇보다 싫은 것은 새똥이다. 똥을 맞는 것과 똥을 밟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그 놈들은 공중에 똥을 싸고, 무고한 땅 위의 존재들에게 예상치 못한 불운을 선사한다. 아주 악독한 놈들이다. 높은 곳까지 날아와 자고 있는 나를 훔쳐보고 있는 새, 게다가 까마귀와 눈이 마주치다니. 아침부터 재수가 더럽게도 없다고 생각했다. 도쿄의 까마귀들은 거대하다. 서울에서 그렇게 큰 까마귀를 볼 일이 없는 나는 놈이 독수리만큼이나 거대하게 느껴진다. 몸서리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 퉁퉁 부은 얼굴을 바라보며 양치질을 했다. 치약 거품이 턱 밑으로 흘러내릴까 봐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히고 말이다. 꼬리뼈 근처 어딘가에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찌릿한 느낌이 두세 차례 느껴졌다. 어, 뭐야 이거. 왜 이래 이거. 세면대를 붙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뭐긴 뭐야. 허리 삐끗이지! 깍깍깍!"
까마귀가 말했다. 닥쳐. 네 놈의 목을 비틀어버리겠어!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라치면 엄청난 통증이 척추에 전해졌다.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한동안 그러고 앉아 있었다. 아... 이렇게 나의 도쿄 여행은 끝났구나. 엉금엉금 기어 침대로 돌아왔다. 창 밖의 까마귀는 날아가버리고 그 자리에 없었다.
아직 일정이 3일이나 남아있는데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나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유바바 온천장의 배경이 되었던 곳에 어제 다녀오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다 잠이 들었다가 배가 고파 잠에서 깼다. 호텔이라면 룸서비스라도 시켜먹을 텐데. 침대는 내 몸을 삼켜버리기로 작정한 것인지 나는 더욱더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행위예술에 가까운 몸짓으로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 있던 컴퓨터를 켰다. 누워만 있다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뒤적이다가 메일함을 열었는데, 친한 친구에게 메일이 한통 와있었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고. 나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아빠가 전화하셨다고. 이 메일 확인하는 대로 집에 전화하라고.
바로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와. 할머니 가실 것 같아.' 아빠는 침착한 척했지만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고 있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행기 스케줄을 변경하고, 그날 밤 밤새 기도했다. 구정 연휴에 세배만 하고 도쿄로 떠나와있는 중이었다. 할머니가 해주신 식혜와 떡만둣국의 맛을 떠올렸다. 정월 초하루부터 뭔 놈의 비행기를 타냐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던 할머니 목소리를 떠올렸다. 다음날 아침 출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잠들만하면 도착이라고 구시렁거렸었는데, 비행기 안에서의 두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지혜야. 할머니 가셨어.' 아빠는 꺽꺽 울고 있었다. 분명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팠는데, 어떻게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택시를 잡고 중대병원 장례식장까지 갔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 영정 앞에 앉아 한참 울었던 것만 기억난다. 상을 치르고 집에 돌아온 날, 할머니 꿈을 꾸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할머니가 가시는 길에 내게 들러 귓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마음의 짐을 오랫동안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짧은 여행에서 좀처럼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 내가 그날 나를 찾아온 까마귀 덕분에(?) 허리를 다쳐, 나가지도 못하고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가, 심심해서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열었다. 이쯤 되면 까마귀 덕분에 할머니 가시는 길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하려고 도쿄에서의 기억을 불러들이게 되었는데, 오늘의 뉴스는 바로.
양치질하다가 또 허리를 삐끗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네이버에 '양치질 허리 삐끗'이라고 검색해봤는데 의외로 많은 사례들이 검색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9년 전 도쿄에서처럼 세면대를 붙잡고 그대로 주저앉아서 욕을 한 바가지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노트북 붙잡고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는데... 눈앞이 깜깜했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가... 지 않고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스트레칭을 시도했다가 비명만 지르다 끝이 났고, 그대로 누워 잠시 자버렸는데 일어나니 더욱 움직이질 못하겠다. 비루한 인간의 몸뚱이! 이 몸뚱이가 뭐라고 고결한 나의 정신과 의지를 가둬버리는 것이냐! 하... 지금은 최대한 통증이 덜한 자세를 찾아 누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초코칩 잔뜩 박힌 쿠키가 너무 먹고 싶다. 그것만 먹으면 통증도 가라앉을 것 같고, 오늘 해야 할 일도 모두 끝마칠 수 있을 것만 같다. 슈퍼마켓은 2분 거리에 있다. 나가고 싶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다가 곧 관두었다. 아... 한국 가야겠다 하다가 2분 거리 슈퍼마켓도 못가는 주제에 무슨 소리냐 싶다.
외국에 나와 몸이 아프다는 것은 꽤나 절망적인 경험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의외로 덤덤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젯밤에 돌고래 꿈을 꾸었다. 심상치 않은 꿈을 꾸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로또를 사곤 하는데, 나의 글을 읽고 있을 당신과 그 행운을 나누고자 이렇게 쓴다. 돌고래는 정말 아름다운 동물이 아닌가. 나는 돌고래가 외계인과 교신한다는 이야기나 오랜 옛날에는 육지 위를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 따위를 믿는다. 완벽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자태, 매끈하게 빛나는 그 몸뚱이, 깊이를 알 수 없이 새카만 눈동자와 빙그레 웃는 그 미소까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생명체이다. 나는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데 중간에 숨이 찼다. 위를 올려다보니 곧 수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힘차게 발차기를 했다. 푸아아 하고 물 밖으로 나왔다. 밝은 회색의 돌고래가 내게 다가왔고, 나는 돌고래를 껴안고 그 매끈한 몸에 한참이나 얼굴을 비볐다. 행복한 꿈이었다. 이 정도면 믿을만한 구석 아닌가? 허리를 다치기 전에 돌고래 꿈을 꾸게 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요즘 내가 즐겨찾는 사진 속 까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며칠째 벼르고 있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