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세계 곳곳의 중국대사관 앞에,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망명 티베트인들이 모인다. 이곳 다람살라의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 템플에 모인다. 망명정부의 총리는 요즘 부정부패로 말이 많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날 열렸던 집회에서도 자기 변론 따위를 늘어놓기 바빴다고 입방아에 올랐다.
분위기를 살피며 동네 한 바퀴를 휘이 돌고는, 감기 기운이 더 짙어졌다. 티베트 전통 약국도 문을 닫아서, 인도 약국에를 갔다. 어지간한 증상이라면 푹 쉬면 괜찮아지니까 견디려고 했지만, 콧물이 너무 심해서 불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계속 코를 풀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코가 헐고, 아무튼. 콧물이 나고 재채기가 난다고 했더니, 하루에 세 번 먹으라며 핑크색 알약을 10개 줬다. 어젯밤 한 알, 오늘 아침 한 알 먹었는데.
이건 거의 수면제 수준이다. 차라리 코찔찔이를 택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올립니다.
여러분, 감기 조심하세요. 흙.
다음 날 아침, 거리는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호주 여행자 제드도 배낭을 꾸리느라 바빠 보였다.
“뭐야? 다들 정말 그를 따라 떠나는 거야?”
“응. 별수 있니?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우리와 함께 출발하자. 어서 짐 싸고 나와서 너희들 짐을 들어줄 현지인부터 구하도록 해.”
또다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함께 고립되어 있었던 여행자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이 마을에 우리끼리 남는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서둘러 짐을 싸고 숙박비를 치른 뒤, 주인 부부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갖고 있던 사진기를 가리키며 나중에 꼭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여장부 같았던 주인아주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부분 짐을 들어줄 현지인들을 구해놓은 모양이었다. 티베트를 거쳐 네팔로 향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트래킹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과 신발은 물론이고 각종 장비까지 히말라야 원정대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신던 운동화, 청바지, 얇은 점퍼 차림을 한 서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고만 있는 우리에게 한 키 큰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별 말 없이 배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티베트 말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멀대같이 큰 키에 비쩍 마른 몸, 새까맣게 탄 얼굴 위엔 언제 빗었는지 모를 푸석한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었다. 우리는 급한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예쓰 예쓰’라고 외쳐댔다. 우리 세 명의 짐을 모두 맡기려면 세 명의 포터가 필요했으나 가지고 있는 중국 돈이 별로 없었다.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떠들어대는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키 큰 사내는 낌새를 눈치챈 듯 두 배낭을 모두 가리키며 제 등 위에 얹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자신이 두 개의 배낭을 모두 들고 걸을 테니 두 명의 몫을 달라는 것 같았다. 우리의 배낭이 다른 여행자에 비해 훨씬 작았기 때문이었다. 펄쩍 뛰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지만 사내는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어 보였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보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제법 신이 난 것 같았다. 옆에서 이를 보고 있던 카르마 씨는 젊은 한국 여자 셋과 함께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이겠냐며 웃었다.
결국,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내는 먼저 가장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메고 그 위에 다른 배낭을 얹었다. 나는 배낭에 줄줄이 달린 끈을 서로 묶어 두 배낭을 고정했다. 그는 제자리에서 몇 차례 콩콩 뛰어 보였다.
카르마 씨는 버스가 올 때까지 니알람에 머무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무에 함께 가면 참 좋을 텐데요.”
“인연이 있다면 장무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정말 고마웠어요.”
그에게 배운 티베트 말로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달했다.
“투제체.”
다행히도 눈은 더 내리지 않았다. 눈 쌓인 산길을 뚜벅뚜벅 걷는 일은 제법 낭만적이기도 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설산의 품 안에 들어와 있는 내가 보였다. 물통에 새하얀 눈을 가득 채웠다. 급하게 출발하느라 마을에서 마실 물조차 사 오지 못했지만 양손 가득 눈을 퍼담아 입에 넣을 때는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사내는 등 위에 무거운 짐 따위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빠르게 걸었다. 이따금 굽이진 길을 가로질러 폴짝폴짝 뛰어 내려가기도 했다. 그를 따라잡기 위해 뛰다시피 걸어봤지만 허사였다. 체력이 달려 헥헥거리다 보면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가 먼발치에 이정표처럼 덩그러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이곤 했다.
어느덧 길은 사라졌다. 키보다도 더 높이 쌓여있는 눈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그나마 제설 작업조차 멈춰버린 지점에 눈으로 만들어진 하얀 벽이 세워져 있었고, 바로 그곳에서 길이 끊긴 것이다. 눈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애초에 길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길의 끝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눈더미 위로 길을 만들며 걸어야 했다. 우리의 발은 미끄러운 눈길 위에 연거푸 미끄러지거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더미 속에 푹푹 빠졌다. 신발과 바지는 눈에 젖었고, 힘이 빠져버린 몸뚱이는 땅 위에 나자빠지기 일쑤였다.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오면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한 걸음 내딛기가 어려웠다.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말라붙은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를 보다 못한 사내는 걸음을 멈추어 눈을 꼭꼭 밟아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 놓은 길 위를 걷는 것은 한결 수월했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내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우리의 손을 잡아끌어 주고 난 뒤 자신의 길을 걸었다. 출발할 때 30여 명 정도의 무리를 이루고 있었던 일행들은 어느덧 뿔뿔이 흩어졌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저앉으면 무리와 더 멀어지게 될 것이었다. 사내는 자꾸만 뒤처지는 우리를 챙기느라 계속해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만 했다. 가벼운 산책을 즐기고 있는 듯 가벼워 보이던 그의 표정에도 어느덧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마른 어깨에 매달린 양팔이 힘없이 축 늘어져 흔들거렸다. 그제야 그의 등 뒤에 매달린 두 개의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배낭 이제 내가 멜게.”
나는 배낭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과 손짓 발짓을 보고 짐작했을 때 그는 분명,
“안돼. 네가 이 배낭을 메고 걷다가는 더 뒤처지게 될 거야.”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의 생각이 맞았다. 우리들은 어느덧 무리에서 제일 뒤처져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웃음기는 얼굴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느덧 하늘의 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러다 산속에서 밤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아저씨는 이 길을 어떻게 혼자 걸어간 것일까.
이미 멀어져 한참을 보이지 않던 일행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은 다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분위기가 왜 이렇게 심각한 거예요?”
“일행 중 하나가 카메라를 잃어버렸대요. 포터가 메고 있던 가방에 카메라가 들어있었는데 중간에 사진을 찍으려고 찾아보니 없더래요. 그자의 몸까지 다 뒤져봤는데도 나오지 않았다더군요.”
“그 안에 있던 것이 확실한 거예요?”
“그래요. 당신들도 조심해요. 아무래도 귀중품은 몸에 지니고 있는 편이 좋을 거예요.”
사내는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저 가방에 뭐 중요한 거 들어있나?”
“뭐야. 그를 의심하는 거야?”
“아니... 혹시 모르니까...”
해가 산등성이에 닿을락 말락 가까워졌다. 세계의 끝까지 이어질 것 같았던 눈길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군데군데 짙은 갈색의 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세는 한결 부드러워졌고 푸르른 초록의 기운이 감돌았다. 국경 마을 장무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앞서 걷던 사내는 수동식 바리케이드가 치어진 낡은 초소 앞에 멈춰 서서 손가락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좁은 초소 안은 노란 백열등 빛으로 물든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사내는 초소를 지키고 있던 한 남자를 우리에게 데려왔는데, 아마도 둘은 친구 사이인 것 같았다. 둘러앉아 그의 친구가 끓여온 뜨거운 차를 마셨다. 얼어붙은 몸이 서서히 녹으며 긴장도 풀렸다. 소통의 장벽을 부수기 위한 다섯 남녀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아주 쉬운 영어 단어를 사용해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대신 표정과 몸짓에 의미와 감정을 실었다.
“정말 정말 고마워.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흔들며)”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며)”
“그런데 얼마나 더 가야 해? 다리가 너무 아파. (울 듯한 표정으로 다리를 주무르며)”
두 사내는 그저 얼굴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는데, 우리의 말을 전부 알아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카르마 씨에게 배웠던 티베트 말로 그들의 이름을 물었다.
“체링.”
그는 수줍게 웃더니 대답했다. 나의 입에서 티베트 말이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나절을 부대끼며 걸어오면서도 이제야 그에게 이름을 묻다니.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도 차례로 이름을 이야기해주었고, 체링 역시 그 낯선 언어들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그는 어디선가 종이와 펜을 가져오더니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얼마간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멋쩍다는 듯이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의 언어는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다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마을을 떠나며 이야기했던 것보다 훨씬 큰 액수가 적혀있었다.
처음 딛는 땅, 처음 마주하는 하늘, 낯선 풍경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가끔 그 안에 있는 나조차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숫자가 적힌 종이를 흔들며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에 들린 종이를 빼앗아 그 위에 새로운 숫자를 적고 그에게 내밀었다. 처음 약속한 금액과 그가 새롭게 제시한 금액의 딱 중간.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그의 표정에 답했다. 거래는 끝났다. 표정과 몸짓 그리고 종이 한 장으로 말이다.
초소를 나와 다시 지독한 여정을 이어나갔다. 체링과의 짧은 실랑이 이후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다. 그의 표정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을 괴롭혔다. 어떤 방법으로든 고마운 마음을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회를 얻기도 전에 이런 구질구질한 협상 따위를 하게 되다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거의 다 왔는데.
굽이굽이 이어진 길의 끝에 마을로부터 흘러나온 불빛들이 점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산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집들이 보였다. 그제야 어느덧 찾아온 밤을 보았다. 니알람을 떠난 후, 아홉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 드디어 장무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환전소부터 찾아 갖고 있던 달러를 중국 돈으로 바꾸고, 체링에게 약속했던 돈을 건넸다. 돈을 받아 든 그는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보는 순간 초소에서의 일 이후로 계속 불편했던 마음이 눈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숫자로 해야 할 일들은 이제 끝났으니까. 그냥 마음껏 고마워하고, 기뻐하고 싶었던 거다. 우리는 그의 거칠고 투박한 손을 앞다투어 부여잡고 콧물까지 흘리며 엉엉 울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진짜 고마워.”
체링은 여전히 수줍게 웃기만 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 날, 한 식당에서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다들 예쁘게 구워졌네. 허허.”
무용담을 전해 들을 새도 없이 그는 떠나버렸다. 진짜 별난 사람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 해 봄, 티베트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자유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티베트 국기를 흔들고 있는 낡은 청재킷의 체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장부 같았던 주인아주머니의 거친 손등과 카르마 씨의 마른 웃음도 함께. 꽃샘추위가 유난히 지독했던 그해의 봄을 온전히 촛불과 함께 거리에서 보냈던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티베트에 있는 동안 단 한 순간도 티베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똑같은 크기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내 마음속 한구석에 그들이 산다.
여행자의 길에는 끝이라는 것이 없다. 얼핏 보면 모든 길에는 ‘목적지’라는 이름의 끝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