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28일 "환상의 택"
이른바 운동권 사투리 중에 '택'이란 게 있다. 영어 tactics의 준말로 일종의 '전술'인 셈이다.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다양한 '택'이 구사되고 경찰은 '택'을 알려고 기를 썼으며 때론 멋지게 성공한 '택'으로 남기도 했고 이른바 '자살택'처럼 스스로 잡혀가려고 머리를 들이미는 택도 있었다. 이 택 가운데 가장 판타스틱하고 원더풀했던 택은 무엇이었을까. 대개는 1989년 오늘 일어난 한양대 진입 '택'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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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봉쇄'가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평양 축전"에 가겠다는 학생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토순례'를 하며 서울로 서울로 몰려왔지만 그들의 목적지인 한양대는 이중 삼중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심지어 정권은 아예 한양대 전철역을 폐쇄해 버렸다. 연세대같이 구멍이 많은 학교도 아니고 지형적으로 보면 협로를 출입구로 한 요새와 같은 한양대에 진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얼굴 패권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은 당시 '의장님'으로 한양대에 있었다. 서울 시내를 떠도는 그 숱한 청춘들을 어떻게 무사히 진입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간부 하나도 멋진 아이디어가 있다며 무릎을 쳤고 서로의 생각을 토로했을 때 둘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똑같은 '택'이었기 때문. 마치 적벽대전을 앞둔 주유와 제갈량이 불 화(火)자를 공히 써 보였던 기분이었다나.
6월28일 서울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던 대학생들이 지하철로 몰리기 시작했다. 등교 시간도 아닌데 뱀떼처럼 몰려드는 대학생들로 지하철은 미어 터졌다. 몇날 몇일을 제대로 씻지도 못한 터라 냄새들도 자심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리고 전철이 뚝섬에 이르렀을 때 한 학생이 신호를 했고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일시에 전철 선로로 뛰어들어 한양대 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또 사람의 물결이 한양대로 접근하자 한양대에서는 여러 개의 사다리가 마치 동앗줄처럼 내려왔고 천 명의 인파는 공성전을 하듯 개미떼처럼 기어올라 한양대 안으로 금새 사라지고 말았다.
한양대를 봉쇄하고 있던 경찰들은 그 장관의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환상의 택이었다. 이 광경은 80년대 학생운동 절정기를 상징하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는다.
조국 통일에 대한 열정이 매우 차가왔던지라 한양대에 진입 생각은 없었지만 '환상의 택'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선로를 달렸던 이들에게 한양대 담에서 우루루 내려오던 사다리들은 "감동을 넘어선 전율"이었다. 얼마 전 한진중공업을 찾았던 사람들 앞에 숲처럼 내려오던 사다리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중삼중으로 차단된 통로를 얻지 못해 담장 안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안타까와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때 그 사다리들은 신나는 구름다리였고, 행운의 징검다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