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19일 IF 가 필요한 날
1987년 6월의 기억은 일종의 정신적 DNA로서 그를 경험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시위대로서, 구경꾼으로서, 또는 응원자 내지 진압자, 관찰자로서 그 거대한 한 달 속에 있었던 모든 이들에게 그 긴박하고 장렬했던 순간 순간은 잊혀지지 않는 영상으로 일생 동안 리바이벌될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러나 가끔... IF라는 단어를 써먹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 날 이랬다면 어땠을까, 이 날 이 인간이 이렇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6월 항쟁 가운데 하루를 꼽으라면 6월 1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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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8일은 최루탄 추방대회 날이었다. 세계 언론은 이날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뭔가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지고 양미간을 좁히게 된다. 외신 기자들이 무더기로 건너와 호텔방을 동나게 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서울 신세계 백화점 앞 수십 명의 전경들이 수만 명의 시위대에 포위되어 무장 해제됐다. 방독면을 빼앗긴 채 자신들이 쏜 최루탄 연기 속을 눈물을 흘리며 걷는 전경들의 모습은 곧 공권력의 한계 상황을 웅변처럼 드러냈다. 그 핵심은 부산 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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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 기자는 부산 시위를 이렇게 특징지었다. "일단 오래 끈다. 시작하면 며칠 밤 새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격정적이다. 비가오면 우산 쓰고 시위하고 옥상에서 구경하던 시민들이 경찰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이 지구력과 격정성이 하이라이트에 달했던 것이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부산역 앞을 장악하고 있던 시위대가 새로운 목표물을 잡았다. KBS! 땡전뉴스의 본산, 어용 보도의 상징. 수만 명의 시위대는 밀물처럼 KBS를 향해 들이닥쳤다. 국가주요시설물인 KBS는 시위대에 완전히 포위됐다. 그때 그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실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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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를 지키던 것은 불과 경찰 6개 중대. 그들도 필사적으로 시위대를 막았다. 안절부절못하던 전두환이 19일 치안본부장 권복경에게 전화해서 "막을 수 있겠나?"라고 애타게 물은 것 역시 부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권복경에 따르면 그는 단호하게 막을 수 있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군 출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없어하면 군이 출동할 태세였다는 것. 권복경은 자신의 보고가 군 출동을 막았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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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8일 밤 부산 사태를 본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고명승에게 군 출동 준비령을 하달했다. 지역 사단으로 안되면 전방의 부대라도 빼라는 것이었다. 박희도 육군 참모총장은 철도청에 군 수송 협조를 요청했고 이종구 2군 사령관도 부산과 마산에 출동할 채비를 마친다. 2010년 공개된「작전명령 제 87-4호」(군사2급비밀) 제하의 비밀 문건에 따르면 11군단장을 부산·경남 지구, 9군단장을 충남북 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등 이미 사실상 계엄 체제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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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6월 19일을 넘기지 못하고 전두환의 군 동원 계획은 철회되고 만다. 이 결정에는 많은 '썰'들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 권복경 치안본부장은 자신의 결연한 보고가 군 출동을 막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특전사령관 민병돈에 따르면 자신이 주도하여 몇 명의 지휘관들이 출동에 강력히 반대했고, 그 반대의 배후에 "듣지 못할 말은 죽어도 안듣는" 자신이 있음을 안 전두환이 명령을 거둬들였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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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은 미국이지 싶다. 미국 CIA는 판세를 읽은 후 주한미군에서 탱크 5대를 지원받아 특전사, 수방사 등의 한국군 부대 정문 앞에 가서 고장이라도 난 듯 버티고 세워 놓았다고 한다. 즉 "나오지 마라." 는 시위를 한 셈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주한 미국 대사 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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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레이건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무력을 동원하지 마십시오.... 레이건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군대를 동원한다면 80년 광주에서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될 겁니다." 한 나라의 대사가 주재국의 대통령에게 할 소리 수준은 넘어 있었다. 하지만 릴리는 이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군바리야. 정말 그러면 너도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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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전두환이 그 특유의 고집을 부려 군대를 출동시켰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광주의 재판이 되어 시민들의 피로 얼룩진 거리를 청소하는 것으로 항쟁이 마무리되었을까. 이미 계엄령이든 위수령이든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목숨을 걸고 유서를 써 두며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출동한 군인들은 총부리를 학생들에게만 겨누었을까. 과연 전두환은 살아서 청와대를 나올 수 있었을까. 88올림픽은 치러질 수 있었을까. 과연 지금까지 전두환이 29만원 재산으로 골프를 치고 경호를 받으며 호의호식하고 그 아들은 대한민국 유수의 출판재벌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과연 어디로 흘러갔을까. 1987년 6월 19일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었던 날이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