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어린 선장 에이해브가 포경선을 희롱하는 압도적인 흰고래 ‘모비 딕’을 추적하는 소설 《모비 딕》을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 이슈마엘은 본래 상선을 타던 뱃사람인데 포경선을 한 번 타볼까 하고 낸터컷에 갔다가 이교도 퀴퀘그를 만난다. 어느 포경선을 탈까 돌아다니던 이슈마엘은 ‘피쿼드’호가 적당해 보여 배에 올랐다.
이때 피쿼드호의 선주들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일어난다. 이슈마엘의 ‘배당’을 얼마로 해야 적당한지 때문이다. 당시 고래잡이 산업에서는 선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에 나가 고래를 잡고, 고래의 기름을 가지고 돌아오면 고래기름의 수익액을 각자의 배당에 따라 나누는 방식이었다.
한 명은 이슈마엘이 고래잡이 경험이 전혀 없으니 ‘777분 배당’, 즉 수입에서 777분의 1을 갖는 배당을 제의했지만, 다른 한 명은 너무 적다면서 300분 배당으로 하자고 한다. 사실 이슈마엘은 최소한 275분 배당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왔다.
다음 날 이슈마엘은 퀴퀘드를 데려가서 함께 계약하는데, 퀴퀘크는 작살잡이로 고래잡이에 경험이 많았다. 선주 앞에서 퀴퀘크가 작살 던지는 실력을 한 번 보여주자 선주는 깜짝 놀라며 ‘90분 배당’을 준다. 지금껏 낸터컷에서 어떤 작살잡이도 이보다 많은 배당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렇게 노동의 보수를 일정한 임금으로 받지 않고, 수익에 대한 배당으로 받는 방식은 흥미롭다. 뱃사람의 노동력이 고래잡이 항해에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선장, 1등 항해사 처럼 항해를 책임지는 리더 그룹은 일반 선원에 비해 훨씬 높은 배당을 받았다. 작살잡이 퀴퀘크가 이슈마엘에 비해 3배가 넘는 배당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슈마엘은 아무런 불만도 제기하지 않는다. 포경선에는 나름대로 역할과 기여도에 따른 노동의 지분율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포경선에서 배당에 따라 정해지는 ‘노동의 지분’은 직관적으로 배에서 자신의 위치와 기여도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때부터 150년도 더 지난 현대의 노동자들은, 이때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발전되고 조직된 시스템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기가 회사에 얼마나 기여를 하고 있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업무가 다양하게 분업화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의 임금 노동자들은 몸담은 회사의 매출에서 자기 노동의 기여도, 노동의 지분은 포착할 수조차 없이 희석되어 버렸다.
희석된 노동자의 가치
증기기관의 발명이 산업혁명을 불러왔다면, 생산성의 2차 혁명은 단연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로 대변되는 분업화일 것이다. 하루 종일 벨트 위로 지나가는 부품의 볼트만 조이는 노동자가 ‘내가 볼트는 조이는 역할이 우리 회사의 전체 비즈니스 활동에서 얼마의 기여를 하는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까? 아마 공장장이라고 할지라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임금의 양에 따라 자신의 기여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저 느낌으로 추측해보는 상대적인 기준일 뿐이다.
이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생산, R&D, 전략, 마케팅, 물류, CS 등 제품 하나를 연구하고 만들고 알리고 판매하고 후처리까지 하는 다양한 과정 속에서 노동자 개인이 회사 전체의 비즈니스 활동에서 ‘몇 분 배당’에 해당하는 지를 파악할 방법은 없다.
이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 부서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왜 회사에서 부서별로 매번 ‘파워게임’이 벌어지는가? 왜 자기 부서가 회사 업무에 이만큼 중요하며, 이렇게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사내 홍보를 하고 다녀야 하는가? 이는 기업 활동에서 특정 부서의 지분율을 경영진도 모른다는 방증이다. 올해 매출이 100이라면 마케팅 부서의 역할이 30이었을까? 제품이 잘 나온 거니까 연구 부서의 역할이 50이었을까? 재고 없이 적시적소에 제품을 전달한 물류의 역할이 30이었을까? 성심성의껏 고객 불만을 해소하고 부정적인 바이럴을 차단한 CS 부서의 역할이 30이었을까?
역할과 정당한 보상이 곧 소속감이다
복잡한 분업화는 분명 기업의 생산량을 늘리고, 덩치를 키우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원가와 가격을 낮추고, 글로벌 비즈니스가 가능한 토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갈수록 모호해진다고 느끼고, 자기 노동의 지분을 확인할 수 없어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하고, 점점 불안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성과와 연봉과 직급, 직책에 집착하면서 자신이 회사에서 쓸모있는 존재이며, 존중받아 마땅한 중요한 존재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고자 한다. 높은 연봉과 높은 직책, 막중한 책임감 뒤에는 이 회사에서 자기 존재의 지분, 내 노동의 지분이 이렇게나 높다는 걸 명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회사에 다닐 때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회사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치고 기여하고 있을까 고민한 적이 많았다. 대기업에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일을 할 때는 전체 마케팅 예산 대비 내가 맡은 예산을 보면서, 내 노동의 지분과 나의 역할, 위치를 가늠해 보기도 했다. 때로는 극단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사라지고, 내가 없다고 했을 때 이 회사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3천 명이 일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내 노동의 지분이 적어도 ‘3천 분 배당’에는 해당할까 생각해 봤지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작년에 전자책 독립출판사 ‘리드모’를 창업한 후, 이제 나는 내가 기획하고, 내가 글을 쓰고, 내가 편집하고, 내가 표지를 그리고, 내가 판매를 하는, 모든 일을 직접 하는 1인 기업 체제로 일을 하다 보니 이제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서만큼은 그런 고민을 덜고 있다.
노동자의 자존감은 일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에서도 오지만, 노동의 지분을 확인하는 데서도 온다. 소속감은 자기 역할과 기여도가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고래잡이배처럼 정량화된 배분율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겠으나,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지분’을 규정하고 스스로의 역할을 파악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업 구성원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소속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출근에서 탈출하다] 연재는 제 커리어와 일, 기업문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출근에서 탈출하다 - 대기업 퇴사에서 1인 출판까지》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주로 일하는 방식과 태도, 가치관 등을 생각날 때마다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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