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인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많았을 뿐 아니라 그의 몸 쓰임도 우아했다고 합니다. 걸음 걸음이 긴장통합체tensegrity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긴장통합체는 단순한 이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스트레칭 위주의 몸 접근법으로는 학습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울퉁불퉁한 근육도 아닙니다. 그런 근육운동은 해당계를 활성화시켜 노화를 촉진시키는 가성비 낮은 운동입니다. 긴장통합체는 몸이 끈과 끈으로 이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움직임에서 어느 부위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다릅니다. 몸 전체가 유기적으로 협응해서 결론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낳기 때문입니다.
92년홍대익숙병.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차는 장요근의 시작점을 인식하게 해 줍니다. 즉 흉추 12번에서 횡경막과 닿아 있는 장요근의 시작점이 인식됩니다. 우리 하부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구나.. 라는 걸 알게 해 줍니다. 일상적인 우리 감각, 오류된 감각에서는 다리와 몸통은 별개라고 여기지만, 학습된 인식에서는 이 둘은 연동되어 움직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으로부터 자유가 아니라 ~ 로 자유를 말합니다. 그리고 소유가 아니라 존재함을 권유합니다. 존재함에서 나오는 자유는 몸옷의 헐렁함을 동반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해도 그 사람의 습관화된 몸표정이 다른 말을 한다면, 교언영색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