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피곤해져 집에 들어온 어느날, 가까스로 현관문 앞까지 다다랐다. 마침 오른손에는 무거운 짐이 들려 있었고, 나는 왼손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내 왼손은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심지어 머리로 비밀번호를 생각해내려 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인지, 설마하니 짐을 왼손으로 옮겨 잡고 오른손을 도어락 번호 위로 대었더니, 글쎄 비밀번호가 바로 생각났고 무사히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 아마도 언제나 오른손이 번호를 눌렀던 탓이었으리라. 어느새 나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경지지경에 이르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