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찾아서
지난 20대 초반, 나는 내 행동 양식에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나 맞이하는 순간이지만, 나에게도 사회 진출의 시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탓이었다. 그동안 나는 말 잘 듣는 학생으로서 주어진 길만 걸으면 되었다. 사고(思考)를 이끌어 줄 표준 교육 과정이 있었고, 잘못을 지적해 줄 어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오롯이 나의 행동과 나의 삶을 책임져야 할 때가 된 것이었다.
나는 곰곰이 나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나는 천성이 비굴하고 비열하면서, 자기 편의적이었다. 내가 동참한 행위의 책임을 친구에게 떠넘기기 일쑤였고, 배려를 잊고 내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가 일상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다. 나는 결코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 행동의 기준이 될 만한 준칙이 절실했다. 거창한 사회 정의가 아니라, 내 일신을 바르게 운신할 규범이 필요했다. 오히려,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쉬우나, 현재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을 정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이야 일제의 부역자들을 거침없이 비난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제국주의의 국제적 흐름 속에 살고 있었다면, 나는 과연 항일(抗日)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최소한 부정의(不正義)라고 생각할 수는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조직 내의 악습들을, 앞으로 나는 거부할 수 있을까. 내 비루한 인성에 비추어, 그대로 두었다가는 작은 아이히만이 되어 평범한 악을 저지르며 살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이 위기감 속에서 당장 내 행위의 준칙을 마련해야 했다.
마침, 이 시기에 우리 사회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크게 유행하였고, 나 역시 내 고민과 맞물린 이 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물론 마이클 샌델의 책은 사회의 정의에 대하여 생각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개인의 행동을 규율할 방침을 정하는 데에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준칙의 후보들
샌델은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최대 다수 최대 행복’으로 정의되는 공리주의와 자유의 존중, 그리고 미덕의 추구였다. 여기에서 미덕의 추구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진 고대의 정치사상이라면, 자유의 존중과 공리주의는 18세기부터 사람들의 정의관을 형성한 근현대적 정치사상이었다. 흔히 보수주의, 종교적 우파와 동일시되는 미덕 이론은 바람직한 삶에 대한 탐구를 통해 정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자유시장주의로 대표되는 자유 이론은 이에 반하여 정의의 원칙이 최선의 삶이나 미덕과 같은 주관적인 견해에 좌우되어서는 안 되며, 정의로운 사회라면 각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의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제러미 벤담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다시 이를 비판하며 자유주의로부터 도출되는 자연권을 “죽마에 올라탄 헛소리”라 비웃고, 모든 도덕적 주장이 반드시 행복의 극대화를 전제하여야 하며, 도덕적 주장의 유일한 출발점은 결국 공리의 원칙이라고 역설하였다.[3] 나는 샌델이 알려준 이 세 가지 기준을 준칙의 후보로서 하나씩 검토해 나갔다.
먼저 나는, 정의를 논할 때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공리주의부터 내 행동의 준칙으로서 적합한지를 살펴보았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공리주의는 행위의 결과를 합리적인 이성으로 헤아려 봄으로써 정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제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나쁘다면 이를 옳은 행동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의 주장은 무척 설득력이 있었다. 예를 들어, 애완용으로 수입해 기르던 붉은귀거북을 방생했던 행위는, 생명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지는 몰라도, 하천의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잘못된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공리주의의 주장은 내 행동을 규율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당장의 처신을 결정해야 하는데, 공리주의의 사고방식은 불확실한 미래에 그 정당성을 저당 잡히는 까닭이었다. 결과가 드러날 때까지 내 행동이 옳았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면, 즉 미지의 미래에 행위의 기준을 둔다면, 현재의 나는 어떠한 행위도 도덕적으로 판단 내렸노라 말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공리주의적 판단에서, 결과라는 것도 끝이 모호하다. 새옹지마의 고사처럼 사건은 사건의 꼬리를 물고 인과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디까지를 내 행동의 결과로 보아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공리주의를 따르자면 나는 죽을 때까지 정의를 입에 담지 못할는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비밀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미 특수부대원의 예를 한 번 상상해보자. 나는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으로 은밀히 탈레반 무장단체를 찾고 있었지만, 그만 지나가던 현지의 농부 두 명에게 목격되고 만다. 이들 농부의 목숨을 놓고 공리주의를 적용하자면, 나는 농부를 살렸을 때의 기대이익(한 명의 생명)과 죽였을 때의 기대이익(부대원이 처할 위험도 감소)을 비교하여, 농부를 죽임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고, 또 더 나아가 그들을 죽임으로써 만연해질 군 내부의 생명 경시 풍조를 들먹여 농부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이를 다시 받아 인류 불행의 원인이 지나친 인구 증가에 있으니, 농부를 제거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행위의 결과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 행위의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미끄러운 비탈길의 오류’라 불리며 비판받지만, 이 오류가 없다면 공리주의의 사고방식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너무나 쉽게 긍정해 버리는 탓에, 이를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다섯 명의 환자를 위해 건강한 한 명을 희생하여 신체장기를 나누자고 할 때 공리주의는 대체 어떤 논리로 반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 공리주의는 미끄러운 비탈길 위에서 그 종착지를 확인하지 못하며, 어느 시점에서도 내 행동을 판단 내릴 수 없도록 만든다.
그렇다고 결과의 현출을 배제한 채 단순히 공리주의적 논리의 성립만으로 도덕성을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이를 인정하면 우리가 결코 옳다고 받아들일 수 없는 추악한 행위조차 정의로움으로 꾸며낼 수 있게 된다. 일본은 지난 태평양 전쟁에서 잦은 학살과 갖은 만행을 저질렀으나, 여전히 동아시아의 해방과 평화를 위함이었다고 항변하며, 실제로도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정당화한다. 동기만을 따지는 공리주의 아래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고, 누가 무엇을 주장하든 도덕적 중립 상태를 만들어, ‘무엇이 바른가’의 문제 자체를 제거해 버린다. 이는, 내가 가진 자기 편의적 성격과 사후 합리화의 기능을 보았을 때, 절대 나를 다잡을 준칙으로 삼아서는 안될 끔찍한 사고방식이다.
(계속)
참고문헌
[1] Dawkins, R. (2007). 만들어진 신. 이한음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6년에 출판)
[2] de Waal, F. (2005). 내 안의 유인원. 이충호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5년에 출판)
[3] Sandel, M. J. (2010). 정의란 무엇인가. 이창신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9년에 출판)
[4] Sandel, M. J. (2012).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안기순 (번역). 서울 : 미래엔 (원전은 2012년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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