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인용문은 꽤나 유용하다. 무명의 글쟁이가 하는 말보다 그래도 이름있는 누군가의 말이 그럴듯해보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보는 이의 지적 허영을 살짝 건드리며 단조로운 글을 풍부해 보이도록 만드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인용할 문구의 주인이 저명할수록 그 효과도 좋다.
그런데 그 인용문이라는 것이 언제나 우리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명언을 뱉은 위인 상당수가 외국인이거나 한글 사용자가 아니었던지라, 간혹 말을 옮겨 적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렇게 이번에 내가 마주한 글귀가 ‘Fas est et ab hoste doceri’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남긴 말로, 영어로는 ‘We can learn even from our enemies’, ‘It is right to learn even from an enemy’, ‘Right it is to be taught even by the enemy’ 등으로 번역되는 문장이다.
이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일단 기존에 어떻게 쓰였는가를 검색해보면, ‘적에게서조차 배울 수 있다’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영어 문장 ‘We can learn even from our enemies’을 그대로 직역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는 right 라는 당위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아 어딘가 흡족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원문인 ‘Fas est et ab hoste doceri’에서도 ‘fas’는 「가(可)함, 가당(可當), 정당(正當), 적법(適法), 합법(合法), 자연법에 허용된 것, 천륜(天倫), 인륜, 도리에 맞음」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적에게서조차 배워야 한다? 적에게서조차 배워야 마땅하다? 적에게서라도 배움이 옳다? 적에게서라도 배움이 마땅하다? 적에게서라도 배워야 마땅하다?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