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길을 뜨거운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것과 같습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좁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문 옆에 있는 벽을 부수거나
자신을 깎아내고, 잘라내는 방법 뿐입니다.
꿈을위해서 어디까지 나를 깎아내도 되나
이렇게 많이 잘라낸 나는 과연 나일까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보고픈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우리는 꿈을 향해 가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유없이 그냥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으로 꿈을향해 묵묵히 걸어갑니다.
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은 하지못합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순간 이미 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왓습니다.
우습게도 국민학교 (초등학교) 때 부터 제 꿈은 "부자"였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한창 "대통령" , "과학자" 를 꿈으로 적어내던 시절이였습니다.
저는 항상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부자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따라오는거고ㅡ, 부수적인거야. 새로운 장래희망을 찾아보렴"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될 때 까지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긋지긋하게 현실로 느껴진 가난
중학생 때는 돈을 벌기 위해 뻥튀기 장사를 했고
고등학생때는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제가 만나는 모든 선생님들은 다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자는 꿈이 될 수 없다.
저는 그 때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아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느낀 가난의 처절함을, 그 감정과 고통을
내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길을 이루는 방법은 돈이었습니다.
얼마 전, 새로 개봉한 영화 <신과함께>를 보고왔습니다.
나태지옥의 초강대왕에게서 주인공이 심판 받을 때
주인공은 가만히 있었으면 그냥 통과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나태하게 살지않고 쉼없이 노력했던 이유를 "돈" 때문이라 했습니다.
초강대왕은 잘못된 신을 섬겼다며, 주인공을 처벌하려합니다.
하지만 그가 돈이라는 신을 섬긴 이유가
자신의 평안을 위함이 아니라, 지극히 이타적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면할 수 있게되죠.
저 또한 한평생 "돈"이라는 신을 섬겼습니다.
돈의 무서움을 알기때문에
돈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고, 추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내가 괴물이 되더라도 나의 자식을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이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더이상 부자는 제 꿈이 아닙니다.
돈이라는 신에게서 벗어남에 긴 여정을 끝낸 나그네처럼
홀가분합니다.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어제, [수태미 마을]이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여기 계신분들의 글을 읽으며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섞이고 싶었고, 보잘것 없는 제 글에 소통해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마을의 주민으로 한발짝 더 나아간 듯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