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먼저
사회 초년병이던 20대 중반, 점심도 잊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업무도 익숙하지 않고, 업무량도 적지 않았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일 욕심도 조금 있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났을까, 보다못한 한 동료직원이 나에게 꿀팁을 귀띔해주었다.
“이렇게 일 한다고 아무도 안알아줘요. 저기 과장님하고 매일 같이 점심 먹고, 인사 담당자랑 밥 한 번 먹는게 승진하는데 훨씬 도움되요”
본인도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실적을 쌓아서 승진할 생각이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승진에 도움이 되더란다. 그리고 일을 잘한다는 것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나온다고.
그 말을 듣고 나도 다른 직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쩐지 다들 업무를 적당한 수준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직원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조직은 일보다는 인맥이 우선이구나. 다면평가를 잘 받아서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사람관계를 우선해야 하는구나.
연공서열 우선
상사에 의한 고과평가가 진행될 즈음, 직원들이 한 명씩 상사를 찾아간다. 같은 직급 내에서 상대평가로 진행되는 까닭에 자신에게 A 등급을 달라는 청이다. 실제로 평가가 나온 결과를 보면. 무엇이 기준이 되었는지 분명해 보인다. 업무 기간 중의 실적과는 완전히 별개다. 유의미한 원인은 오로지 두 가지. 상사와의 개인적 관계, 그리고 승진할 때가 되었는지. “승진할 때가 되었다”는 표현은 참 웃기지만 그러한 것이 있다. 일을 잘해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승진을 한다. 이 때 최하의 고과를 받은 젊은 직원에게 돌아오는 위로의 말은 항상 뻔하다. “젊으니까 언제든 기회가 있다” 나도 적당히 눌러붙어서 시간을 채우면 승진할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누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나”를 물어보았을 때, “오래 일한 직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다들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이 관여되었을 때를 제외하면”이라는 가정을 숨기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교되는 일 잘하는 직원을 시기하고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 내렸다. “일 잘하는 ㅇㅇ씨가 이것도 좀 해줘~” 그를 비꼬며 자신의 업무까지 떠넘기려 들었다. 상사도 여기에 한 패거리이면서, 연공서열로 정리된 직급 체계가 직원들의 사기를 고려한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조직은 기간이 곧 경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구나. 일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하루 사라져갔다.
회사여 안녕
일하는 직원이 우대되지 않는 현실에 많은 직원들이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회사도 직원들의 퇴사율을 보며 문제의식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항상 원인 규명에 헛다리를 짚었다. 때로는 사원들의 애사심 문제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정을 붙이지 못하였나 싶어 가족같은 회사를 추구했다. 인맥과 연공서열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생각조차 못했나보다.
어떤 처방에도 직원들의 퇴사는 여전했고, 직원들의 적당주의도 여전했다. 사기업이었으면 진작에 망했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떠난 그 일터에는 지금도 인간 관계로 가득차 있겠지. 요즘따라 옛날 회사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