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결과를 내는 과정보다 준비하는 과정을 즐기나보다. 지금 이 공간에도 못다 완성한 글이 있고, 이 곳에 글을 쓰기 전에 네이버 블로그에서 작성하다 잠정 보류 중인 글도 있다. 정말 솔직하게, 절대로 이어갈 내용이 없다거나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여 멈춘 것은 아니다.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보고, 아래 캡쳐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목차를 구성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대게 일어나지 않는다.
목차 번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시리즈 중 현재까지 발행한 글은 서문 격에 해당하는 첫 글 뿐이다. 물론 첫 글만해도 3만자에 10pt로 20페이지가 넘는 긴 글이지만, 어쨌든 작년 5월 서문을 내고 더 글을 적지 못했으니, 기획한 글 중 1/10 밖에 진행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글을 쓰는 단계에서 이미 흥이 사그러든다는 점에 있다. 사실 글을 쓰는 것도 쓰는 것이지만, 글을 준비하는 기간과 노력이 만만치 않은데, 여기에 대부분의 기운을 다 소진해 버리는 것 같다. 위 네이버에서 준비하는 글도 많은 논문과 책을 레퍼런스로 삼고 있으며, 대부분이 영문으로 된 텍스트라 전부 읽어 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자료들을 모으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수요가 없는 분야라 국내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는 논문들도 서로 베껴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인터넷 자료는 신뢰할 수 없었고, 결국 돈을 들여서라도 아마존을 통해 책을 구매하거나 도서관 상호대차로 자료들을 들여왔다. 이렇게 참고문헌들을 모으고 읽고 해석하며 주장을 날카롭게 벼리는 작업은 힘들면서도 무척이나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영어 자료만으로는 부족하여 프랑스어와 일본어도 조금 배워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작년 5월 첫 글을 쓴 이후로 단 한 줄도 여기에 글을 추가하지 못하였다. 서문을 본 사람들은 대체 글을 언제 쓰냐 물었지만,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왜인지 흥이 나지 않는 터라 손을 놓은 것인데, 이 흥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다. 확실히 나도 구제불능인 면이 있다.
다만, 나는 과정만을 즐기고 결과를 내지 못하는 용두사미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곳에서 미완성한 글도 저곳에서 미완성한 글도 반드시 완성하려는 마음이 있다. 조금씩이라도 틈나는대로 쓰며 하나씩 하나씩 끝맺음할 수 있길 희망한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하여 작은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