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입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새기는 날이죠.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따뜻한 인류애를 기원해 봅니다.
■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神,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캐릭터죠. 여기엔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좀 있습니다.
그는 제우스의 명을 받아 인간(남자)을 창조합니다.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을까요?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두둔하는 행동을 종종 하게 됩니다. 여기에 빡(?)이 돈 제우스가 인간에게서 불을 빼앗아 버리고, 프로메테우스는 몰래 불을 훔쳐 인간에게 다시 전해줍니다.
이쯤 되니 인간은 프로메테우스를 진정한 신으로 모시게 되죠. 질투로 가득찬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묶어두고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게 합니다. 아야 아파라...
그리고 인간(남자)에겐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를 만들어 고통을 안겨 주었다고 하네요. 판도라가 고통인 이유는 판도라로 상징되는 불행과 희망의 반복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서라도 인간에게 전해주려 했던 구원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은 곧 '지식'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인류를 구원하고 널리 이롭게 할 지식 말입니다.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를 꼽으라면 저는 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를 떠올립니다.
테슬라는 전기 발전에 있어 에디슨과 어깨를 견줄 만큼 큰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직류에 에디슨이 있다면 교류엔 테슬라가 있죠. 테슬라는 무선 통신, 더 나아가 무선 에너지 전송까지 연구했던 사람입니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들이 결국 그를 불행으로 몰고 간 셈인데, 그는 지구가 하나의 큰 도체이고 이를 잘 활용하면 인류는 거의 무한의 전기 에너지를 공짜로 쓸 수 있다고 보았죠.
특허, 사업, 돈벌이에 민감했던 에디슨과 달리 테슬라는 자신의 발명을 인류가 널리 무료로 사용할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죠. (앨론 머스크의 'TESLA'도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테슬라 모터스는 공익 특허로도 유명하죠)
그러나 세상은 이런 마인드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왜?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하니까요. 그것이 세상의 불편한 진실이죠. (테슬라에 대한 이야기는 '그림자 정부 미래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음모론 타입의 책인 것은 감안하시길)
■ 인류의 웃기는 코메디. "누가 전기차를 죽였는가?"
"Who killed The Electric Car?". 이 다큐멘터리를 본지도 10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2006년에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90년대 중반에 이미 성공적으로 생산되었던 전기차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내연기관 차량이 사라지면 타격을 입을 정유회사와 자동차 제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죠.
대단합니다. 이때 이미 테슬라 못지 않은 고성능의 전기차가 생산되었음에도 특정 의도로 기술을 사장시켜 버린 것이니까요. 그리고 근 20년 이상 내연기관 차량을 밀어준 것이죠.
안타깝게도 풀영상은 한국에서는 볼 수가 없네요. 조각 조각 영상이지만 참고로 보시길 바랍니다. 영상에서 차량을 거의 강제로 수거해 없애다시피 하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 이어지는 프로메테우스의 역사
프로메테우스는 대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간을 사랑하고 아꼈을 뿐이죠. 좋은 것이 널리 쓰이길 원하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픈소스 운동입니다. 리눅스(Linux) 개발자인 리누스 토발즈는 소프트웨어 세상의 프로메테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오픈소스 정신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세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죠.
리눅스는 30여 년간 수많은 학생과 연구소, 저자본의 소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덜고 소프트웨어 활용과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텃밭이 되어 주었습니다.
블록체인도 대표적인 오픈소스죠.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현세의 프로메테우스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생소한 소스를 이해하게 되었고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쉬 난이도 상승에 따른 에너지 소모 문제는 해결해야겠지만 엄밀히 얘기한다면 탈중앙화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대뜸 중앙화 기반의 에너지 소모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에게서 건네 받은 불을 더 효율적으로 태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숙제라고 봅니다.
스웨덴 자동차 기업 볼보(Volov)는 안전에 대해 타협 불가의 철학으로 유명합니다. 그럼에도 안전에 관한 많은 특허를 무료로 공급했지요. 3점식 안전벨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두고 장난질 치지 않으려는 볼보의 정신은 또 하나의 횃불입니다. 원가 앞에 늘상 타협하는 한국의 모 자동차 기업들하고는 차이가...
■ 자연 순환을 활용하는 새로운 횃불
예술 작품이라도 만드는 걸까요? 이것은 와카워터(Warka Water) 솔루션으로 불리는 21세기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입니다.
이태리 건축 디자이너 아르투로 비토리가 설계한 와카워터는 물부족과 열악한 환경으로 신음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사명감으로 만든 작품이자 솔루션입니다.
자신의 건축 디자인 기술을 활용하여 대기에서 순환하는 이슬을 잡아내 물을 공급하는 것이죠. 친환경적이면서도 마을 공동체와 잘 어울리는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오고 있습니다.
이 솔루션은 비단 집수 장치를 넘어 빛, 주방, 정원, 집... 그리고 마을까지 확대되어 가는 중입니다. 작은 불씨가 계속 번져가듯 말이죠.
자연이란 순환하는 것이고, 인간도 결국 그 순환 속에 한 부분이라는 철학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입니다. 이 솔루션들은 모두 오픈 소스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슬로 정한수(정화수, 井華水)를 받았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도 다를바 없을텐데요, 이 와카워터 솔루션을 소형으로 라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오픈된 설계도가 어디 있을텐데... (_ _ ;)
어쨌든 MS의 수장 빌 게이츠의 화장실 프로젝트 등 자연의 순환 원리에 바탕을 둔 솔루션들이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솔루션은 대개 오픈되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 다시 니콜라 테슬라로
1900년 콜로라도 스프링스 연구소에 앉아 있는 니콜라 테슬라.
뉴욕 이스튼 휴스턴가 실험실 고전압 테슬라 변압기 앞에 앉아 있는 니콜라 테슬라.
제가 정말 좋아하는 두 장의 사진입니다. 불을 건네 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의 모습이라면 이렇지 않았을까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떤 세상을 그리고 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
인류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널리 사랑해야 할것만 같은 성탄일이라 그런지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