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행은 다양한 주제로 나누어진다. 눈으로 즐기는 관광부터 예술, 인문, 역사를 더듬는 여행에 이르기까지 점점 다양해진다. 심지어 낯선 나라의 ‘뒷골목 여행’이란 것도 있을 정도로. 앞으로 더 풍부하게, 더 깊은 여행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여기에 ‘사람 여행’을 보탠다. 사람 여행이란 나 아닌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걸 말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설렘을, 때로는 호기심을, 또 때로는 불편함도 맛볼 수 있으리라. 때문에 나로서는 그 어떤 여행보다 여행에서 얻는 느낌이 오래가는 편이다.
며칠 전에 아내가 대산농촌재단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되었다. 주제는 ‘토종 과일나무 살리기와 조사 연구’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토종 과일나무를 조사하고 연구하며 되도록 살리고자하는 프로젝트다. 아내와 나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연구원이 함께 한다.
이 작업은 전국을 돌아다녀야한다. 토종 과일나무는 대부분 개량종 과일에 밀려 사라지거나 외면 받아온 편이다. 하지만 유전자원으로, 의학적인 보고로, 정원수로 다양하게 그 쓰임새가 있기에 힘닿는 만큼 조사하고 연구 보존하고자 한다.
재단 지원도 고맙지만 전국에서 우리와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참 반가운 일이다. 숨은 보석을 발견하는 이상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토종 과일나무를 살리고 가꾸어가는 사람들. 틈나는 대로 알아보니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다. 문경, 서산, 태인, 도계, 원주...나무도 오얏, 복숭아, 살구, 대추, 포도...
여행에서 나무가 매개가 되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그 첫 사람은 문경에 사는 내 지인이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 사이인데도 꾸준히 관심분야를 공유해온 편이다. 이 친구는 척박한 문경 산자락에 터를 잡으면서 그 지역에서 자생하는 녹니(綠李)라는 토종 오얏나무가 있다는 걸 알고 이를 살렸다. 친구가 직접 쓴 다음 글을 보는 게 그 사람과 삶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 땅과 역사와 이웃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이다.
*록리를 아시나요?
한자로 초록 록(綠)자에 오얏 리(李)자를 쓰지요. 푸릇하면서도 누르스름한 재래종 오얏이지요. 8월 하순 쯤에 익고 크기는 지름 2.5~3cm 가량.
이렇게 맛있는 오얏을 먹어보지 못했어요. 신맛은 조금 나고 단맛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렸을 적 먹던 오얏은 제법 시었지요. 오얏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던. . .
조상대대로 먹어오던 전통과실은 알이 굵고 상품이 된다는 개량과일에 밀려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어요.
몇 해전 어느 높은 산골 마을 한 귀퉁이에 쓸쓸히 자라고 있는 록리를 알게 됐어요. 그 마을 촌로에게서 처음 그 이름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한국고전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록리를 검색해 봤더니 옛 시인의 싯구마다 하얀 록리꽃이 등장하고 조선시대 세종 연간에는 궁중 제사과일로 진설됐더군요. 허균이 쓴 음식관련 책인 도문대작에는 한양 세검정 것이 좋다고 나오네요.
제가 사는 이 산골마을에도 몇 그루 있는데 멸시를 받는 것 같아서 안타깝군요. 마을 노인들 말씀으로는 그이들 클 때 아랫쪽 큰마을 처자들이 바가지에 보리쌀을 가득 채워 와서 이 록리와 바꿔 갔답니다.
몇 해 전, 새끼 록리를 번식시켜 이제 작은 과수원이 이뤄졌어요. 올해부터는 조금씩 달릴 것 같아요. 이 록리는 살충제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높은 산중에 자두나무 같은 게 있어 살려놓았더니 꽃도 좋고 열매도 가지가 찢어지도록 달려 늦여름 주전부리 과실로 제격입니다.*
우리 농장에도 그 록리를 심으면서 친구의 밝은 에너지와 깊은 철학도 함께 뿌리내리고 뻗어가길 빈다.
여행지 정보
● 대한민국 경북 문경시 문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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