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내가 겪은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순박했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옆에 아무렇게나 뻗쳐놓은 채 딥슬립을 해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은 몇 안되는 나라일 것이다. 누구나 이방인에게 하나라도 더 도움주지 못해서 안달이고, 한마디라도 더 정보를 주지 못해 애닳아했다. 그래서 이렇게 연속 포스팅까지 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만난 착한 크로아티아 사람 두번째 이야기는 시베니크에서 만난 민박집 아저씨 얘기다. 시베니크(Šibenik)는 크로아티아 서쪽 바닷가에 있는 동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큰 성당이 있는 곳이다.
렌터카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자다르에서 스플리트 내려가는 길에 성당 보러 잠깐 들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같은 버스 여행자들은 주로 크르카(Krka) 국립공원 가는 전진기지로 이 도시를 이용한다. 크르카는 17단 폭포가 있는 카르스트 지형의 산골짜기로, 발끝만 담궈도 벌금물것 처럼 생긴 푸르고 맑은 물에서 수영이 가능한 대인배적 천혜의 물놀이터다. 나도 크르카로 가기 위해 시베니크를 들른 참이었다.
시베니크 터미널에 도착한 뒤 버스에서 내리자 당장 숙소 호객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붙들었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크로아티아는 숙소들이 예약 사이트에 올려두지 않고 터미널이나 관광중심지에서 당일 호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잘만 흥정하면 예약 사이트보다 훨씬 좋은 곳을 훨씬 싸게 묵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특히 시베니크 같은 소도시는 더더욱 그랬고. 예약해둔 숙소가 없었던 나는 한낱 호객할머니를 마치 중학교때 돌아가신 외할머니라도 만난듯 반갑게 맞으며 기꺼이 그 뒤를 따랐다.
할머니가 데리고 간 집은 구시가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자리한 2층짜리 오래된 가정집이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호구조사는 이미 어느정도 마친 터였다. 독방이냐, 그렇다. 욕실 따로 쓰냐, 그렇다. 세탁기 있냐, 없다. 와이파이 되냐, 안된다. 필요하면 구시가나 공공 도서관 가서 써라....등등등.
집주인은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머리가 살짝 벗겨진 남자분이셨다. 그분은 더듬거리는 영어로 내가 묵을 방을 안내해주었다. 나는 무심코 스마트폰을 꺼내어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보았다. 어? 두 칸이 잡힌다. 분명히 할머니한테는 와이파이가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최근에 새로 놓은건가. 나는 주인에게 폰 신호를 보여주며 공손히 말했다.
"와이파이 비번좀 알려주시겠어요?"
잠시 주인장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더니, 알겠다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났다. 옆집 와이파이 비번을 알아와도 충분할 것 같은 시간이 두 번쯤 지난 뒤 주인장이 나타났다. 주인장은 뭐라고 잔뜩 쓰여진 종이를 나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옆집 거야......"
......정말 옆집 거였어.......
"괜찮아. 써도 돼. 그 집 사람 착해 :)"
아저씨가 더 착해......ㅜㅠ
크로아티아 사람들 착한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왠지 점점 더 나만 진상이 되어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 어쨌든 나는 아저씨의 정성에 감사드리며 그 비번을 고이고이 입력하여 와이파이를 잡았다. 그리고 이 얘기를 IT 전문가 친구에게 했다가 개인정보 탈탈 털릴 일 있냐며 크게 혼났다. 괜찮아. 내 개인정보는 이미 대륙의 공공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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