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나약해지더라도 주눅은 들지 말 것
Sagoda Q. 좌우명과 그 작의는?
190920
기기가 발달할수록, 플랫폼이 다양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생각과 일상을 공유한다. 물론, 감성은 같은 선상이다. 과거, 싸이월드의 배경음악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었듯, 지금은 멜론과 연동된 프로필뮤직을 카카오톡에 올려 놓는것뿐. 프사에 따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 글을 웃지 않고 진지하게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상과 기분을 SNS에 여실히 담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은 카톡으로 그들의 심리를 표현하지만, 카톡은 사적인 감정을 표하기에는 또한 공적인 공간과 엉켜있으므로 나는 왓챠와 인스타를 이용한다. '인스타그램이야말로 가장 공적인 공간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비공개 계정을 사용할 뿐더러, 사람들은 굳이 그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클릭하여 '상태 메시지'를 보지는 않으니.
초등학생 때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일기와 더불어, 선생님이 묻는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가훈이라거나 꿈 혹은 좌우명 같은 물음들. 꿈은 뭐 어찌저찌 대통령이거나 미스코리아 (…) 아니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 로 퉁치면 됐지만, 가훈이나 좌우명은 그때의 나의 머리로는 바로바로 있어보이는 답을 할 수 없어 홀로 끙끙 고민했었다. 그러다 고민한 건 대기만성 (………).
좌우명이나 가훈은 한 번 정하면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하는 것인줄 알고, 온갖 있어보이는 말들은 다 더했다. 하지만 이제 내겐 계절에 맞춰 옷을 갈아입듯 쉽게 바뀌는 것.
올 초에는 이 문장을 올려놨다. 내 몫의 불행만을 감당할 것.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있노라면 너무 공감을 한 나머지 그들의 고통 몫을 전부 내 쪽으로 짊어졌다. 그러다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할 때도 종종 생겼다. 그래서 딱 그 얘기를 들은 이후는 털어버리도록. 다시 일상을 영위함에 있어서 굉장히 힘을 얻은 말이었다. (내가 지은 말이지만)
그리고 최근에는 이 글의 제목처럼 바꿨다. 한없이 나약해지더라도, 주눅은 들지 말 것. 막학기에 돌입함과 더불어 본격 취준생이 시작되니 그런지 주변에서 앓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늘어난다. 나도 그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 앞에서 나까지 앓을 수는 없는 노릇. 지인들의 시선에서는 굉장히 당당해보이고 자신감 넘쳐보이는 나라도 사실 불안하거나 나약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건강해보인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 생각했는데.
주눅이었다. 언제부턴가 부당한 일을 마주하면 그가 누구든 조목조목 따졌고, 온갖 성을 다 바쳐 준비했던 공모전이 탈락하더라도 그날만 울고 다음날의 나에게 까지는 데려가지 말자는 오늘의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를 대하자 자신감이 따라왔다. 그 덕에 사람들은 내게 (정신 혹은 마음이) 튼튼해보인다는 말을 했고, 그 칭찬들은 오늘과 내일의 내 몫으로 반씩 분담하여 칭찬 서랍속에 쏙.
어떤 좌우명이 있다는 건, 미래에 행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 더불어 내 변화의 이유를 정의내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sagoda Q. 여러분의 좌우명과
그 좌우명을 짓게 된, 작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제 글을 읽어주시고,
리스팀해주시고,
정성스런 댓글 남겨주시는 스티미언님들의 말들도
아주 튼튼한 서랍에 든든히 보관해두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