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앙크로와트 (2)
인류 사회의 변천사, 인류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 살아온 과정의 역사,
그 역사를 배우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배워야 하는 것들 중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역사가 희화화 되거나 역사속의 인물들은 어느새 우리로 부터 잊혀져 가고 있고, 그 순간부터 역사는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마는것 일것 입니다.
처음 시골 동네 아이들과 여행?은 크게 주거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언가 ‘하나같은’ 적어도 GYA에서 공부를 했다면 또는 한다면 동질감, 일체감, 크게 나타나지 않아도 자긍심이 생겨 GYA 이후의 삶에서도 자신들의 꿈을 펼쳐가는 일에 쏘시게 같은 역할을 하고 싶었고,
또, 그들만이 가진 세상 누구도 갖지않은 무엇인가를 찾아 보고 듣는다면 분명히 또 다른 활력소가 될 수 있을것이라 여겨, 그것들을 찾아 나서다 보니 ‘여행’ ’유적지 -> 앙크로와트’로 귀결되어지게 되었습니다.
앙크로와트의 자료로 그 발판이 된 배경을 먼저 옮깁니다.
앙코르 와트(크메르어: អង្គរវត្ត, 영어: Angkor Wat, Angkor Vat)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주의 앙코르에 위치한 사원으로, 12세기 초에 수르야바르만 2세에 의해 옛 크메르 제국의 도성으로서 창건되었다. 앙코르 유적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축조된 이래 모든 종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맡은 사원이다.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으로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인 비슈누 신에게 봉헌되었고, 나중에는 불교 사원으로도 쓰인 것이다. 앙코르 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로서,[1] 옛 크메르 제국의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 가장 잘 표현된 유적이다. 또한 캄보디아의 상징처럼 되면서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관광객들이 캄보디아에 오는 제1 목적이기도 하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러나 찬란한 유적뒤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지만, 지난 여행에 동참했던 GYA 멤버 49명은 일생에 잊혀지지 않을 기억들을 담았을 것으로 확실하게 믿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