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내가 여섯살때로 기억하고 있는 어느날
(이당시 내동생은 엄마뱃속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 이제 착상을 막 성공한 쪼렙이지 않았을까)
가족들과 신발을 사러 가양동 신도시장에 갔었는데,
나는 당시 유아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테이스트가 굉장히 명확했던 것 같아.
나는 유치원 갈 때 쫄바지 입는게 그렇게 싫었어. 오로지 골덴바지였지.
두벌밖에 없는 골덴바지만 고집하다가 바지를 세탁이라도 한 날이면
그날은 등원거부를 했었고,
또 뒤지게 맞고 울고...뭐 이런 꼬맹이가 바지에만 집착 했겠냐고
모든 의상에 대해서 자기 고집을 부릴줄 알았던 패셔니스타였던거야!
뭐 암튼 시장 갔던날, 온가족이 즐겁게 샤-핑을 마치고 이제 내 신발만 사서 돌아오면 모두가 개운한 그런 날이었을텐데 내가 신발가게에서 울면서 떼를 썼었어.
랜드로바가 신고 싶다고.
당시 랜드로바 구두의 가장 작은 사이즈는 220, 그리고 내 발사이즈는 180
어른들이 봤을때 원더키디 아동화나 대충 챙겨주면 꿈뻑꿈뻑 하면서 부록으로 나오는 우주모빌에 정신 팔리기도 모자란 레벨에 랜드로바라니.
이십팔년전 일이지만 모친도 나도 엉덩이를 후려때린 (맞은) 기억이 아직도 있는걸 보니 진짜 어이없고 고집센 꼬맹이이기는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내 기억에 그렇게 선명한게 엄마한테 궁둥짝을 그렇게 쳐맞으면서도 그 랜드로바가 그렇게 좋아보이고 너무 멋있는거야.
엉덩이 맞다가 땅에 내려놓으면 다시 우루루 신발가게로 달려가서 발에도 안맞는 랜드로바를 신고 어기적 걸어서 도망가다가 자빠지고 또 혼나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
그날 결국 월드컵 원더키디 아동화를 반강제적으로 착용당한 후 집까지 울면서 돌아왔는데, 당시 원더키디를 좋아했으면서도 그 아동화는 죽도록 신기가 싫었어. 자석 벨크로라는 그 편리함이 내 자존심에는 큰 상처였거든 내가 아직 어른들처럼 끈있는 신발을 신지 못하는 미성숙한 개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과정이.
다행히도 체념이 빠른 꼬맹이었었는지 그냥 그때 내가 그걸 신을만큼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성장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끈 달린 신발을 신는게 너무 당연스럽게 되고 그런거지 그게 당연한 이치이니깐.
그러니 당시에 왜 여섯살의 나는 랜드로바를 신을 수 없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었어. 그냥 당연히 작았으니깐, 아직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거니깐.
그런데 충분히 다 컸다고 생각하는 서른네살 지금에 와서
내가 여섯살 때 왜 랜드로바를 신을 수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문득 다시 깨닫게 된다.
내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고 원하는지랑은 별개의 문제로
내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뚱이는 크고 나이먹고 경험은 쌓였는데
욕망의 수준은 아직도 내 욕구 이상을 넘어서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냥 여섯살 아이 수준에서 더 성장하지 못한거지.
나 자신도 담지 못하는 깜냥에서 누군가를 담고 지켜주겠다고 하는 말이 그저 허세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는 사실이 이제야 나를 아프게 찔러.
그래서 이제는 나 자신을 좀 더 들어다보고,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려고 해. 여섯살 때는 내 발사이즈도 모르고 징징댔지만,
그때보다는 스물여덟살이나 더 먹었으니깐.
아무리 간절하게 원한다해도
발에 안맞는 신발을 질질 끌면서 울기에는
너무 꼴사나운 나이가 되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