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문을 닫은 이유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싫어서라고 말했으나 도착시간을 얘기했더니 기다리겠노라 대답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마 너무 고독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토요일 2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고 W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했다.
Closed. 라고 써붙여놓은 가게문을 밀고 들어갔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안쪽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반겼다. 나는 딱딱한 바 의자에 앉아 그가 핸드드립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쪽 벽면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LP판때문에 옛날에 이곳이 음반가게였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구석에 작은 가스스토브가 있었는데 과거에는 커피숍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테이블과 의자가 사라진 텅 빈 공간을 데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의 입에서 계속 새하얀 김이 나왔다.
그는 전기포트에 제주삼다수를 붓고 전원 스위치를 켰다. 물이 끓는 동안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숱이 많은 머리를 긁으며 "저는 클래식만 듣습니다." 라고 말했다. 곧 레퀴엠이 흐르기 시작했다.
"케냐, 과테말라, 예가체프."
그는 세 가지 원두 중 어느 것을 먼저 마실 지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케냐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로스팅 정도에 따라 핸드드립 할 때의 물온도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왜 85도의 물로 강배전한 케냐를 내리면 암바사 맛이 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핸드드립 가게를 곧 오픈할 예정이라 노트를 펼쳐서 그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적었다. 커피를 볶을 때 모차르트나 쇼팽의 음악을 틀어주면 약배전이 잘되고,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틀어주면 강배전이 잘된다는 비법들이 정말일까. 그는 과시하면서도 겸손한 척 했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는 커피를 더 마시고 싶냐고 물었다. 이미 칼리타와 멜리타, 그리고 넬로 드립한 케냐를 3잔이나 마신 상태여서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섭섭해 할까봐 예가체프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해버린 것을 금방 후회했다. 난 그날 밤 두통과 불면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었다.
그의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긴 설명이 끝나면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질문하라고 말했고 하나의 질문을 던지면 내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는 모호한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이렇게 말에 굶주린 그가 왜 2번이나 만나자는 요청을 거절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이 싫어서 커피숍을 접었다는 말은 더더욱 믿을 수가 없다. 그는 핸드드립에서 로스팅까지 이것 저것 상세하게 설명하다가 진정한 매니아라면 수다스럽지 않다고 말하며 점잔을 뺐다. 음악이 끝나자 그는 다른 음반을 틀었는데 이번에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흘러나왔다.
문득 자신의 드립하는 폼이 멋있냐고 물었다. 진정한 대가라면 그런 질문을 나같은 '범인'에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영혼 없이 멋있다고 얘기해주었더니 그의 얼굴에서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는 기차시간때문에 이만 일어서야겠다고 얘기했다.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내 가게가 번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게를 하면 손님들이 악마처럼 느껴져서 테이블과 의자를 다 치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낄 거라는 말을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러면 저도 선생님처럼 가게문을 닫고 레퀴엠에 맞춰 커피나 볶게 되겠죠, 라고 대답했다.
당신에게 그의 말이 예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난 지금 테이블과 의자가 사라진, 나의 가게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퀀텀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