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진실의 반대가 거짓이라면, 진실한 사람은 거짓됨이 없어야 한다. 거짓됨이 없는 사람의 최소조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능력을 가진 사람 중 태어나서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세상에 진실된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얼마나 우울한가? 그러니 과거에 진실되지 않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며 진실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자. 어디까지가 과거이며 어디부터 현재인가는 따지지 않겠다.
생애에 걸쳐서가 아니라, 현재 거짓말을 하지 않기는 쉽다. 말 자체를 하지 않으면 거짓말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조건은 최소조건일 뿐이다. 진실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짓을 말하지 않음이 진실됨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나와 가족들이 사는 집에 불이 났다고 하자. 나는 집에 있었지만 안전하게 대피했으며, 가족들은 외촐 중이라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내가 무사한 모습을 보고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가족들도 별 탈 없냐고 묻는 A에게 아무 답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상대는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아마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잇지 못 할 것이다. 과연 넘겨 짚고 오해한 A의 문제인가? 때로는 말하지 않음과 거짓은 다르다는 주장을 듣는다. 만약 A의 반응이 궁금해서 A를 놀리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단순히 말하지 않았을 뿐인가?
이번에는 침묵 대신 무언가를 이야기 한다고 하자. 진실된 사람은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 사실만을 이야기 해야한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내가 한숨을 내쉰 후에 "가족들은..."이라며 말을 끝내지 않는다면 A는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A는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잇지 못 하고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것이다. A는 오해했으며, A의 오해는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은 나에게 원인이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거짓된 사람일까? 사실 나는 가족들은 외출 중이라서 무사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하다는 안도감과, 극심한 재산피해에서 오는 좌절감이라는 강한 두가지 감정들이 몰아쳐서 자꾸만 목이 잠기고 말을 하기가 힘들어서 말을 맺을 수 없었다. A가 오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을 정도로 내 안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약하여 불운한 사고를 겪고도 나를 위로하려는 상대의 생각까지 배려할 수 있을 정신력은 없었다는 이유로 나를 진실되지 않은 인간이라 여길 수 있겠는가?
진실됨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실이 드러나야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기도 하고, 그 순간이 아니면 드러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감추어지기도 한다. 많은 것이 감추어지고, 이미 드러났던 것들은 뒤틀린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메세지 자체는 메신저의 진실됨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 한다. 진정 중요한건 내가 A에게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상세하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 순간에만은 진실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