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내 고향을 떠나 이렇게 둥둥 떠 있을까? 이 물음은 내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처음 살던 집은 5명이 한집에 살았다. 그 오래된 낡은 2층 집은 언제부터였는지 2층 화장실에서 물이 새 아래층 내 방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프레임 없이 쓰던 매트리스가 물을 흠뻑 먹었었고, 나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을 했다. 관리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알아보았는지 가구 배상은커녕 물이 샌 바닥을 고치는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고집을 피웠고, 쉽게 당연히 잘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나의 진을 다 쥐어 짜낸 뒤에야 해결이 되었다. 그야말로 미국 사회에 오만 정이 다 떨어지는 사건이었다.
컴퓨터가 없는 나는 과제를 하느라 매일 학교 컴퓨터실에서 늦게까지 있었다. 어느 늦은 밤, 학교에서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에서 흑인들이 싸움이 일어났고, 자리에서 모두 잘 피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하여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을 때, 싸우던 한 사람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으로 내 다리를 잡고 쓰러졌고, 나는 경기를 일으키고 울부짖었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중국인이 버스 의자를 밟고 날아올라 나를 잡은 흑인의 손을 치우고, 나를 잡아 끌어내려 그 자리에서 나를 피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청바지 위로 내 다리를 잡았던 피가 흥건했던 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오랜 시간 동안 꽤 힘들어했다.
그 뒤, 학교 친구의 도움으로 그 당시 말도 안 되는 헐값의 비행기 표를 구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는 미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빡세게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미국에서의 생활을 잊었다. 가족들에게는 모라고 말을 해야 할까? 실망하시겠지? 그래 그러실 거야... 어떻게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고민고민 했던 시간들...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돌아오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여름방학이 다 끝나고 결국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비행기를 탔다.
그 후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일들을 다 견디면서... 이번에는 집에서 그만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른 가시 심장이 된 내가 갈 수가 없었다. 그래,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겠다. 내가 한국을 떠나올 때와 어떻게 사회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여전히 "예"가 아닌 "아니오"를 말하는 나, 이기에... 여전히 한국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뭐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때로는 오히려 더 할 수도...) 어쨋든, 비단 이것뿐만이 아닌 여러가지 이유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산티아고... 나는 이때 내 여정을 멈추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돌아올 길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내 여정을 너무 일찍 끝냈다. 다시 돌아올 길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끝까지 갔었더라면 그러면 내 인생은 지금 또 다른 길을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지 정확히 7개월이 지나 몸은 여행을 끝냈으나, 마음이 여정을 끝내지 못하는 나를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스카이프로 몇 차례 인터뷰를 보고 디렉터와의 인터뷰를 잡은 날, 엄마는 오빠랑 병원에 가기로 하였으나 오빠는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 이른 아침 일찍 나가야 했고, 내가 엄마와 함께 병원엘 갔다.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메일을 보내면서 더이상 인터뷰는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번쯤 가 보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곧 미국 돌아가는데... 그냥 인터뷰 봐도 되는데... 왜였는지 모르겠다. 그냥 지쳤다. 아마도 '너희 회사도 별로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다. 프러덕이 좋다고 해서 회사가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뭐 사실 회사는 다 비슷하잖아. (물론 인터뷰를 보고 잘 된다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국에 있는 헤드헌터들에게도 연락해 보았다. 거절은 짧았다. 회사를 너무 자주 옮겨서 안 된단다. (아니... 뭘 또 그렇게 자주 옮겼다고... )
공항에는 꼭 혼자 온다. (물론 집에 갈때도...) 나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지 걱정이 되어서 공항에 못 나오게 한다. 그냥 떠나는 가족이든, 남아 있는 가족이든, 너무 쓸쓸하지 않게, 마음 허전하지 않게, 금방 돌아올 것 처럼 잠시 마실 나가듯 그렇게 집을 나서고 싶었다. (마실 가는 사람치고는 가방이 좀 큰가... -_-;;)
든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던데... 내가 가고 나면 집이 또 얼마나 텅 빈 집 같이 느껴지실까? 열심히 일해서 아빠 보러 금방 다시 오겠다는 나의 말에 목이 메시던 엄마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컴퓨터를 보는 내 눈이 점점 흐려진다.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는 것도 아닌데... 누구를 위한 발걸음인지...
또 이렇게 엄마를 두고 무겁게 떠나는 나.
참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