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불 켜는 밤
오늘이 정월 대보름입니다.
보름달을 보시며 소원을 빌으셨는지요.
오늘은 날이 맑아 전국 어느 곳에서나 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달을 볼 만큼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저도 언제쯤 달이 뜨는지 수시로 밖을 내다봅니다.
한참을 정신없니 지내다 달이 제법 높이 떴을 때야 보았습니다.
없는 솜씨에 사진을 몇 장 찍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보름달이 떴는데 얼른 소원 빌어보라고 권했더니 배시시 웃기만 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어떤 아이는 소원 꼭 빌어야하나요?
빌면 이루어지나요? 하고 이것저것 물어 본다.
몇 해 전에만 해도 달맞이를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 해는 달님, 달님 하며 아이들에게 달을 향하여 절을 하게 하는
가족들도 보이지 않고 불꽃놀이를 한다고 깡통을 돌려서 만드는
동그란 불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언제나 동네에서 제일 먼저 달을 보는 집에 큰 복이
내린다고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동산이나 언덕에 올라가서 달이
뜨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주신
다복 횃불을 켜고 절을 하고 떡을 구워먹었습니다.
동네 아저씨들은 달이 어느 능선에서 뜨는지, 달의 색깔이 진한지
묽은지를 보시고 올 해는 농사지을 물 즉 강우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미리 점쳐두었습니다.
달구경도 하고 떡도 먹고 소원을 빌고 나면 오래 밖에 있다 보니
으슬으슬 한기가 스며들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대보름
일정이 모두 끝났지만 엄마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보름 행사를
시작한다.
잣불을 켜는 일이었다.
실하고 상처 없는 잣으로 골라 바늘에 꿰어 불을 붙여
조그만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축원을 했다. 그 사이에 잣은 불꽃이 커지기도 하고
사그라들기도 하면서 끝까지 탄다. 그렇게 끝까지 타는 동안
엄마는 온갖 축복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종교적으로 보다 과학적으로 보나 실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의식이었으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누구보다 절실해서
잣불 켜는 의식은 엄숙함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했다.
우리 집 대보름날의 절정을 이루었다.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축원 하는 일이라
반드시 깊은 밤 인적이 끊어진 다음에 거룩한 의식이 진행 되었다.
식구가 많은 집이라 한 사람씩 축원을 하자면 오래 걸렸다.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 몫의 축복은
조금도 줄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고 깊은 밤
달은 점점 높은 하늘로 가고 엄마의 잣불은 밤을 잊고 팔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