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박김치
밥 때만 되면 언제나 반찬 걱정이다. 식성은 서로 다르고 입도 짧은 식구들이라
한 끼 지나는 일이 쉽지 않다. 냉장고를 뒤지고 섰다 설에 먹던 나박김치가
안쪽으로 밀려 가있어 통을 꺼내 보시에게 담고 도라지생채와 나물 한 접시로
식탁을 차린다. 찬 것을 싫어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막걸리를 데우고 따끈한 물을
준비한다.
밥을 먹기 전에 마른입을 축일 요량으로 나박김치를 한 숟갈 떠먹는다.
제때 먹던 맛이려니 하고 생각 없이 국물을 들이키는데 맛이 이상하다.
슴슴하게 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제 때 먹지 않으니 그만 너무 신 것 같다.
하긴 설에 자꾸 통을 꺼내고 제때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 저녁에야 넣곤 했더니
그새 맛이 변한 것 같다. 그리고 예전보다 간을 약하게 한 것이 원인이다.
엄마가 계실 때는 친정에 가면 엄마가 해 주는 나박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여자는 초사흘이 지나야 친정걸음 한다고 하시며 시집 간 여자는 시집에서 할 일
먼저 하고 시어른께서 다녀오라 하신 다음에 길을 나서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을
하셔서 나는 친정을 연휴가 다 지난 휴일에나 가게 되었다.
그렇게 늦게 가도 엄마의 나박김치는 늘 맛있었고 떡이나 다른 음식들도 어떻게
보관을 하셨는지 한결 같은 맛이었다. 밥을 차려 주시고 곁에 앉으셔서 전도
꽂이를 빼 주시고 생선 가시도 발라주서 외손자도 먹이고 사위도 주시며 지극한
사랑을 쏟으셨다.
그 해에도 거의 일주일 쯤 되어 친정엘 갔다. 엄마는 이런저런 음식을 꺼내
밥을 차리시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 어서 먹으라며 물 쟁반을 들고 앉으신다.
나박김치를 떠먹고 엄마 김치 맛이 이상하다는 말을 생각 없이 내 뱉고 말았다.
엄마가 어딜 가려고 하니 그런 것 같다고 하신다. 엄마가 얼마나 낙심하시고
힘이 떨어지셨는지 그 때는 생각도 못했다. 밥을 먹는 내내 엄마 음식이 맛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 몇 해를 지난 어느 여름이었다.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와서 누나네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왔다고 하며 엄마만 두고 서둘러 갔다. 며칠을 지내시다 아무도
없는 한가한 틈에 엄마는 무슨 파우치 같은 주머니를 꺼내셔서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걸 네가 맡아 가지고 있다 막내 결혼 할 때 주라고 하시며
손에 쥐어주신다. 주머니 안에는 금목걸이와 팔지 반지 두 개가 들어있었다.
나는 의아해서 엄마 왜 그러시느냐고 하니 사람 일은 모른다며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여름을 우리 집에서 지내시다 찬바람이 나서 집에 가시기 전날 이었다.
몇 해 전에 내가 무심코 했던 나박김치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이 죽기 전에 먼저
혼이 나가기 시작하는데 여자는 음식간이 달라지고 바느질이 달라지고 말씨가
달라진다고 하셨다. 그렇게 시작하면 삼년이면 세상을 뜬다고 하셨다.
나는 눈앞이 막막해서 눈물밖에 안 나왔다. 엄마는 그게 다 세상 이치라며
어른 모시면서 항상 잘 살펴 드리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그 해 설이 되기 전에 엄마는 먼 세상으로 아버지께로 가셨다.
저녁에 나박김치 담았던 통을 닦으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번에는
관리를 잘 못해서 맛이 변하긴 했어도 그 때 물정 모르는 딸이 엄마 변하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김치 맛이 변했다고 하는 딸을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셨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