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달아
시샘달 마지막 날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물오름달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깬 날 오늘이 3.1절이라는 생각에
비 그친 하늘을 보면서 아 봄이로구나 하는 마음만 벅차서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하는 나물에 오곡밥도 깜빡 할 뻔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며 자라던 몇 가지 풍속인데 지금은 그도
친정이나 시댁에서 해 주면 먹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대보름이 아니라 하루 전날 즉 열나흘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오곡밥에 아홉 가지 나물을 먹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날이지요.
아홉 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지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글공부하는
선비는 책 아홉 권 을 읽고 나무꾼은 나무 아홉 짐을 하고
길쌈하는 여인은 베 아홉 필을 짜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대보름으로 복을 비는 날이지요.
보름에 달을 보며 복을 빌기 전에 우선 근면하게 힘써 일한 다음
하늘에 복을 비는 삶의 태도 즉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이렇게 몸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복을 비는 행위는 대체로 이렇게 진행되지요.
우선 잠자리에 일어나 입을 떼기 전에 엿을 한 조각 떼어 입에
물려줍니다. 이는 액막이라고 하지요. 그 다음 귀 밝으라고 귀밝이술도
한 잔씩 하고 피부병 없이 잘 지내라고 부럼을 깨는 것까지 모두
말을 하기 전에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여인네들은 제일 먼저 우물에 물을 긷는데 용알뜨기 라고 해서
한 해 동안 집안에 운이 트이고 복이 와서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었지요.
보름날에는 식단도 달라집니다. 아침에는 어제 먹던 오곡밥에 나물은
모두 사라지고 흰 쌀밥에 쌈을 먹는데 한 가지 웃지 못 할 일은
보름날 고기를 못 먹거나 김치를 먹으면 일 년 내내 살쐐기가
인다고 하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찍 저녁을 먹고 달구경을 하는데 제일 먼저 달을 본 사람은
대운이 트인다고 하여 여간 부지런을 떨었던 게 아니랍니다. 다복으로
나이 수대로 묶어 달님, 달님 부르며 소원을 빌며 절을 하고 그 불을
모아 가래떡을 구워 같이 먹는데 서로 여러 사람들에게 먹이려고
했지요.
그러는 동안 달집을 묶었던 지푸라기 하나라도 흘리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 지푸라기를 까마귀가 물어 가기라도 하는 날엔
부정 탄다고 해서 특별히 주의를 했고 아이들이 날리던 연도
그 때 다 태워 없앴습니다. 이는 정월 대보름이 모든 놀이의
끝맺음이라는 의미가 있지요.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은 높이 떠 밝은데 일 년 내내 가족들이나 집안일로
힘이 든 여인네들은 어디 가서 위로를 받을 길이 있어야지요. 요즈음처럼
쇼핑을 하든가 무슨 관광을 가는 것도 모르던 시절이니 하는 수 없이
어른 안 계신 작은 집에 모여 물장구를 치며 노래를 하는데 요즈음
노래가 아니고 규방가사 같은 음률에 저마다 하소연을 하면 그게
노래였지요.
요즘 신세대들은 물장구라는 말이 생소 하지요?
물장구가 수영할 때 발차기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커다란 자바기나
옹패기에 박을 띄우고 장구채 같은 막대로 두드리던 놀이였는데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찍어내던 분들이 여럿이었지요. 영문 모르던 저도 괜히
눈물이 날만큼 물론 요즈음의 야자타임처럼 웬만한 내용을 서로 묻어주고
참 물장구를 치는 집으로 모이기 전에 집집마다 미리 어레미라는
굵은 체를 하나씩 걸어두지요. 까닭은 야관귀라는 귀신이 늦은 밤에
이집 저집 다니다 식구 수를 세어 하나씩 잡아 가는데 체 구멍 세다가
눈이 아른거려 어지러워서 그냥 도망을 가라고 그런답니다. 그리고
야관귀가 싫어하는 게 호박냄새라 보름에 호박 나물을 꼭 먹는 이유랍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구하는 행위의 공통점은 부지런과 선을 전제조건이라는
것이지요. 남들이 일어나기 전에 단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나 복을
구하는데 하늘인들 어쩌겠습니까? 또 하나의 공통점인 나눔의 정신인데
열나흘에 먹던 오곡밥과 나물은 다음날까지 두지 말고 밥 못 짓는
어려운 이웃들과 같이 먹으라는 뜻이고 달집 태우고 구워 먹는 떡도
더 이상 집에 감추어 놓고 혼자 먹지 말고 여럿이 나누자는 뜻이지요.
선을 행하는 자는 귀신도 해코지 못한답니다.
야관귀도 명색이 귀신인데 그깟 호박나물이 무서워서 달아나겠습니까?
자선을 하는 사람에겐 하늘에서도 복을 내리는데 하늘하고 친한 사람
건드리면 귀신이라고 해서 하늘에 미움 사지 않고 무사히 지나간다는
보장이 어려워지는 게 무서웠겠지요.
큰 복은 하늘이 내리지만(天福) 반복은 사람이 구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구복(口腹)이 원수요, 수족(手足)이 효자라는 말은 시대를 초월하는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해는 보다 열심히 일하고 선한 생각 선한 말씨 선한 행동으로
한 해 복 많이 받을 수 있게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