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야기한 적 있었지만, 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임에도 산정특례 신청이 너무 불편하여 이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병원을 1년에 1번 갈까 말까 하여 의료비 지원이 특별히 필요하지도 않고, 보건복지제도의 헛점을 지적할 때, "어쨌든 너도 수혜자가 아니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사고가 있을지 모르고 큰 사고를 당한다면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산정특례 신청을 했습니다.
산정특례 절차를 마친 이후 처음으로 병원에 가보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라 평소라면 병원에 가지 않았을 일인데, 그냥 갔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갑니다. 이상하게도 진료가 끝나고서야 의사가 묻습니다. 어떤 질환이고 어떤 치료를 받고 있냐고. 의사에게 내가 산정특례 대상자라는 사실만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질환이 명시되어있음에도 그리 물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묻는 것에 대답했습니다. 어떤 질환이고, 증상이 경미하여 특별히 치료를 받고 있지는 않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여러번 강조하였음에도 주사는 안 되겠다며 진료를 마칩니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갑니다. 나는 이부프로펜 계열에 알러지가 있습니다. 내 질환과는 관계 없는 알러지입니다. 약국에서는 다시 병원에 전화를 겁니다. 그러더니 약도 됐다며 그냥 다음 날에 다시 방문하라고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내 질환이 무서워 주사도 안되고 약도 안 된다는 것인데 무얼 하려고 다음 날에 다시 오라는걸까요. 물론 정말로 아무 문제가 아니라서 주사도 약도 필요가 없긴 했지만, 그냥 절차를 보고 싶어서 끝까지 절차를 밟았습니다. 지갑을 꺼내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진료비가 없다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하고 나니 산정특례 제도의 문제가 더욱 확연히 보입니다. 우선, 이번에 병원을 방문한 이유는 내 질환과는 무관하게 귀 안에 상처가 났는데, 상처가 있으면 이어폰을 착용하기가 불편하니 빨리 낫기 위해 연고라도 바르려고 갔습니다. 이 경우는 질환과는 무관하기에 특별히 산정특례를 적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진단료를 내야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무관한 일에도 산정특례가 적용되니 의료쇼핑 등의 오남용 문제가 따릅니다.
그리고 접수 시에 산정특례 대상자라는 사실만 전달할게 아니라, 질환과 증상의 정도, 가능한 치료와 불가능한 치료 등을 상세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희귀난치성 질환자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알러지는 많은데 이러한 알러지들을 기록해놓고 의사에게 전달해야 사고 없이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번 매번, 환자가 모든걸 기억하고 의사에게 전달하는건 너무 불편합니다. 아마 제도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증상이 경미한 나에게까지 의사가 주사와 처방을 두려워 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산정특례 신청 전에는 아무 문제 없이 받았던 치료들인데 지금은 어려워졌습니다.
산정특례 대상자 중에 적은 자기부담금조차도 부담하기가 힘들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있습니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다 가족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도 시간적인 문제로 쪼들리다 경제력까지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이 부족하여 제대로 치료 받을 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지간한 장애에는 낙태를 허가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분명 나라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차라리 낙태를 허가했다면, 그럼에도 낳은 부모의 책임이라며 회피할 여지라도 있었겠지요.
아무쪼록 제도가 개선되어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정도의 도움이 제대로 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불편한 이야기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