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학생들이 나와서 토론하는 교육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 토론의 주제는 ‘야간 자율 학습을 폐지해야 하는가?’ 였다.
야간 자율 학습(이하 야자) 폐지 주장은, 그것이 실질적으로 ‘자율’이 아니어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라는 요지였다. 반면 야자 폐지 반대 주장은, 무조건 폐지할 게 아니라 학교에서 공부가 잘 되는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하고, 야자의 폐지는 사교육 부담을 늘릴 뿐이라는 요지였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었다. 야간 자율 학습은 누군가에겐 ‘자율’의 탈을 쓴 ‘강제’였다. 나 역시 야자를 경험했기에, 많은 친구들이 그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저 견디곤 했다는 걸 안다. 학생들에게도 ‘저녁’이 주어져야 뭔가 다른 삶을 꿈꾸고 자신의 다양한 미래를 도모해볼 것 아닌가 하는 주장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간의 입시 제도를 보면, 그런 생각은 장밋빛에 불과하다는 말도 맞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저녁’은 또 다른 ‘타율’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손에 쥔 대부분의 학생들은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움직일 거라는 게 폐지 반대 입장의 주장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제도와 그것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부여잡고 있던 가치가 혼재되어 녹아 있는 걸 알 수 있다. 아래의 기사는 1980년 7.30교육개혁 조치 후에 과외와 보충수업이 전면 폐지되자 자율학습이 편법으로 생겨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생겼던 것이 40여 년간 이어져 온 것이다.
아침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과 방과 후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입시 지도를 하는 변형된 보충수업이 고교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7.30교육개혁조치 이후 과외공부와 보충수업제가 폐지되자 학교 정규수업만으로는 대학입시준비가 불충분하다는 판단에서 학교마다 새로운 편법으로 취하고 있는 보충수업이다.
-동아일보 1981년 4월 9일자 <변형 보충수업 고교에 '자율학습' 바람>
야자에는 좋은 대학을 향한 욕망이 담겨 있다. 그 욕망은 개인이나 학교가 모두 가진 일반적인 것이었고 고등학교에선 그걸 반영했다. ‘서열의 앞자리에 서고 싶은 욕망’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을 거치면서 야자는 학생들에게 공평한 시간과 장소를 부여하는 교육적인 장치로 인식되기도 했다. 야자가 가장 먼저 없어진 곳 중 하나가, 사교육 시장이 활발한 강남 8학군이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경쟁은 입시, 교육에서도 이어졌다.
야자가 질긴 생명력으로 이어져온 데에는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남들이 하는 만큼 ‘저녁’을 내놓아야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살아왔다. 저녁을 투자해서 뭔가를 더 얻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을 내놓아야 생존에 있어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사회의 시스템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다. 회사원에겐 그것이 회사에 대한 충정이자 미덕이었고, 자영업자에겐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고, 학생들에겐 낙오에 대한 불안감을 상쇄하는 방법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말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목적은 사람이어야 하고, 사람이 그것의 부속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겨나자, ‘저녁’을 돌려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저녁’을 어떤 일을 유지하거나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대신, 어떤 목적의 수단 자체가 된 자기 자신을 세계로부터 놓아주는 시간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강제적인 야자 역시 숱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폐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렇게 야자에는 교육에 대한 여러 관점과 가치, 사회적 기대와 욕망 등이 녹아 있다. 그 시간을 거쳐 왔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있는 나로서는, 그 시간에 녹아 있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험들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해졌다.
고교 시절, 우리 모두는 똑같은 시간을 손에 받아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책상에 앉아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선택해야 했다.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고, 교실 안에서는 정숙해야 하고, 공부 말고 딴 짓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룰이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억압으로 받아들였고, 누군가는 숙명으로 느꼈으며, 또 누군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로 활용했다. 나 역시 억압과 기회 사이를 오가며 그 시간을 보냈다.
겉으로 볼 때 단순해 보이는 풍경도, 한 자만 들어가면 복잡하고 다채롭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상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바라보면 그 시간을 단 하나의 말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은 연못이라도 물안경을 끼고 수면 아래로 얼굴을 조금만 담가보면 수면 위에서 보이지 않던 숱한 생명체들을 볼 수 있듯이, 그 시간 역시 수면 아래의 모습은 다채롭기 그지없었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상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똑같은 포장지로 싸여 있었지만, 우린 누구 하나도 똑같지 않았다. 각자가 하나의 세계였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사이, 나는 그 ‘잃어버린 시간’을 추억하고 있었다. 욕망이니, 억압이니, 시대의 가치니 하는 다양한 평가를 뒤로 하고, 생각하고 웃고 읽고 공상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제는, 내게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 주어지길 소망하는, 도를 넘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세월을 지나 이제야 나는 ‘자율적으로’ 공부할 마음이 들었고, 책이나 상상을 앞에 펴놓고 저녁을 보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 사회에 나온 이후,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길에서 받아든, 생활의 의무와 책임들은 타율보다 더 무서운 자율이었다. 그 자율을 벗어나면 생활이 헝클어지고 삶이 엉망이 된다. 생활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부모로서 누군가가 강제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 앞에서 나는 20년 전 나를 묶었던 그 잃어버린 시간의 ‘타율’을 꿈꾸는 것이다.
어느 노랫말처럼, ‘그때엔 짐, 이제는 힘이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늘도 무시무시한 자율의 경계를 넘어 타율이 지배하는 땅으로 걸어 들어간다.
P.S.
이 글은 그동안 썼던 '야간 자율 학습'에 관한 에세이의 서문 격입니다.
한 이틀 쉬려고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감기에 걸려 컨디션 난조로 일찍 잠이 들었고, 그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아이를 재울 때 계속 같이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업무상 처리할 일들도 많았습니다. 업무적으로 한 가지 일은 성과를 내서 우리 기관이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업무적으로 보람 있는 한해가 된 것이지요.
어제도 아이와 함께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자다가, 새벽 5시에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줄곧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두 시간 정도 홀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글 쓰는 일상의 사이클을 복원하고자 합니다.
역시, 글이 있는 일상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