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위로가 되는 상징
S o u l e s s a y F r o m K e v i n
‘위로’와 ‘상징’이라는 대단해 보이는 단어들이 제목을 구성하고 있지만,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제목만큼 대단한 얘긴 아니다. ‘옥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옥상이라고 펜트하우스나,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럴싸하게 그려지는 옥탑방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노란색 물탱크 하나를 한쪽에 안고 있고, 비온 다음 날이면 부서진 시멘트 바닥에 물이 고이는 평범하고 낡은 옥상일 뿐이다. 가끔 떠돌이개가 올라와 똥을 싸놓고, 그 똥이 너무 클 때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 다녀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 누추한 옥상 말이다. 가을이 지나면 누군가가 한쪽에 커다란 비닐을 깔고 그 위에 고추를 펴서 말리는데, 어떤 누군가는 주인 없는 고추를 바라보면서 자기가 옥상을 다 전세 낸 거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그런 옥상이다.
옥상은 분명 사적인 공간이 아닌데, 누군가는 옥상에 나무 장대를 세워 빨랫줄을 연결해두고 지극히 사적인 빨래를 널어놓기도 한다. 그 빨래엔 알록달록한 속옷도 있고, 원래는 흰색이었는데 세월로 변색된 베이지색 티셔츠도 있다. “빨래를 널 공간을 내어줄테니 마음껏 빨래를 너시오.” 라고 누군가가 선의를 베풀어 준다 해도 나 같으면 쉽게 널지 못할 종류의 옷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불온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빨간 팬티나 망사 스티킹이 걸리는 날이면, 내가 이곳에 머물러도 될까를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옥상은 분명 공공장소라는 기본을 떠올리곤 겨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면 많은 고민들이 해결된다.)
옥상에 있는 동안 바람이 불어 빨래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심지어 그 빨래가 불온한 상상을 제공하던 그런 종류의 빨래라면, 저걸 다시 널어 주어야 할까 아니면 재빨리 자리를 피해야 할까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 고민은 곧바로 내 소심한 마음을 재료로 하는 상상과 연결된다. 저 빨래를 집어 들어 대가 없는 선의를 베풀려고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빨래의 주인이 나타난다. 빨래의 주인은 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기이하게 매달린 손바닥만 한 팬티에 시선이 꽂힌다. 이 상상은 두 가지 결말과 이어진다.
첫째 결말, 이십대의 빨래 주인은 소리를 지르며, 옥상 아래로 달려내려간다. 내 눈은 이미 흐릿하다. 난 범죄자가 된 심정으로 빨래를 뒤로 하고 달려내려간다. 우리 집으로 황급히 들어가서는 문을 잠그고 거친 숨을 내 쉰다. 빨래 주인이 미식축구 동아리의 주장을 맡고 있는 남자 친구를 대동하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 데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둘째 결말, 오십대의 빨래 주인은 소리를 지르며, 옥상 한 쪽 난간에 기대있던 싸리비를 집어 들고는 내게 돌진한다. 내 눈은 이미 흐릿하다. 빨래 주인의 싸리비가 팬티를 꼭 쥔 내 손보다 빨랐다. 팔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싸리비의 끝은 내 왼쪽 귀에 도달했다. 몇 차례의 난타를 당한 후 난 황급히 도망쳐 내려가서는 우리 집으로 들어간다. 문을 잠근다. 무릎을 짚고 한참동안 거친 숨을 내 쉬고는 허리를 펴는데, 내 손엔 손바닥만 한 팬티가 들려 있다. 아-
SF와 로맨스, 드라마까지 넘나드는 상상을 하던 그 옥상은 실은 어두운 날에 반짝이던 하나의 모닥불처럼 한동안 내 삶에 위안을 주던 상징이었다.
고1때 아버지의 사업이 쫄딱 망한 후, 살고 있던 2층 양옥집을 경매 업자에게 넘겨주고 우린 도망치듯 언덕 위의 작은 빌라로 이사를 갔다. 구불구불한 작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진 동네를 한참 오르면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오래된 빌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기서 우리의 새 일상이 시작되었다. 예전 집에선 삼촌이 군대 간 후 혼자 널찍한 방을 썼었는데, 큰 방을 장롱으로 막아 만든 1평 남짓의 공간이 내 방이 되었다. 갖고 있던 컴퓨터나 우리 집의 주요 가전제품들은 경매로 넘어간 후였다. 어두운 시기였다. 아버진 술만 마셔댔다.
일상의 모든 것이 후퇴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난 기적처럼 이전보다 좋아진 한 가지를 찾았다. 바로 옥상이었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빌라의 옥상은 하늘과 더 가까웠다. 그리고 그곳에선 바라보는 사방은, 하나하나가 ‘풍경’이었다. 저녁이 되면 하나씩 불 밝힌 골목의 작은 집들이 내려다 보였다. 골목의 가로등불이 하나씩 켜지면 하늘의 별이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바람은 다른 건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불어왔다. 난 그 바람이 닿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옥상에서 꿈에 젖듯 풍경에 젖어들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옥상엔 늘 나 혼자였지만, 1평짜리 내 방에서 백열전구를 끄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옥상에 서 있는 내 곁에 어린 아이, 여고생, 담배 피는 직공, 짝사랑 하던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거기서 많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이유로, 내가 썼던 소설엔 이 언덕 위 빌라 옥상이 많이 등장한다. 내가 맨 처음 썼던 단편 소설의 배경이 바로 이 빌라이고,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그 옥상이었다.
그 옥상은 내게, 위로가 되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내 삶이 캄캄할 때, 갑갑할 때 들여다보거나, 발걸음을 돌려 가보면 위로가 되는 물건이나 장소가 있다. 누구에게나 이런 ‘위로의 상징’이 존재한다. 옥상, 뒷마당, 집 근처 초등학교의 낡은 스탠드, 동네 입구 나무 아래의 작은 평상,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조약돌, 등 뒤 책장에 무심하게 꽂혀 있는 책 한 권.
그 어떤 평범한 것도 그런 상징이 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것들은 평범하지 않다. 특별한 이야기, 누군가의 마음에 불을 밝히는 긴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위로하는 상징
케빈 아놀드의 아버지인 잭 아놀드에게도 이런 위로의 상징이 있었다. 잭 아놀드는 씩씩거리고 짜증을 내며 회사에서 돌아오곤 했다. 가족들은 그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가족들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어두운 방에서 홀로 TV를 보았다. 그 다음으로 뒤뜰로 나가서 천체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케빈 역시 아버지가 그런 모습으로 집에 오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했다.
어느 날 케빈은, 아빠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다른 가족에게 물어봐도 노르콤이라는 회사에 다닌다는 얘기만 할 뿐, 아빠가 구체적으로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가족들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케빈은 할 수 없이 어두운 방에서 홀로 TV를 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직접 물어본다. 케빈에게 돌아온 건, 잠시 동안이라도 날 내버려 둘 수 없냐는 핀잔뿐이다. 케빈은 상심해서 방으로 들어가고, 이것이 마음에 걸린 아버지는 케빈의 방을 찾아온다. 아버지는 다음 날 함께 회사에 가보자고 제안한다. 다음 날 아침 케빈은 아빠와 함께 출근길에 오른다.
유통 회사의 중간 관리자인 아버지의 일상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버지에게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고, 아버진 돌발적인 문제에 대응해야 했다. 회사의 서류에 대해 케빈에게 알려주려던 아버지의 시도는 수시로 걸려오는 업무 전화로 인해 번번이 무산된다. 그 와중에 아버진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왔다고 하며 케빈을 어디론가 이끈다. 그곳은 회사의 작은 휴게실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커피 타임이었던 것이다. 이곳에서 케빈은 아버지와 내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무섭고 짜증만 내던 아버지의 내면을 들여다본 것이다.
케빈: 아빠? 언제 유통과 제품 지원 서비스 매니저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하셨나요?
아빠: (웃음) 미안하다. 그냥 좀 웃긴 생각이 들어서. 정말 유통과 제품 지원 서비스의 매니저가 되길 내가 원했다고 생각하니. 내 말은 좋은 직업이긴 하지만, 내 평생을 보내길 원했던 직업은 아니었거든.
케빈: 뭘 하고 싶으셨는데요?
아빠: 농담하니? 프로 축구 선수잖아.
케빈: 아니, 정말로요.
아빠: 정말? 글쎄, 차선책은 남겨뒀었지.
케빈: 이 일이었나요?
아빠: 아니, 이건 아냐.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지만, 너희 엄마한테도 말야. 내가 네 나이였을 때 난 배의 선장이 되고 싶었어.
케빈: 배의 선장요?
아빠: 그래, 대형 쾌속선 같은 배 말야. 아님 화물선이나 석유 수송선 같은. 그걸 타고 바다에 나가 한밤중에 별을 보며 항해하는 거지. 방향을 잡을 때 지금은 모두 기구를 사용하지만, 난 몰랐거든. 그래,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어.
케빈: 왜 못하셨는데요?
아빠 : 왜냐고? 글쎄다. 어느 하나가 또 다른 결과를 부르듯 대학을 졸업하고 네 엄마를 만났지. 다음 해 여름 난 노르콤 선적 부두 여기에 직장을 가지게 된 거야. 지금까지 마찬가지지.
케빈: 아빤 훌륭한 선장이 되셨을 거예요.
아빠: 아니, 아마 아닐 거야. 아마 배멀미나 걸렸겠지. 케빈, 인생에서 네가 원하는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다. 넌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 일들과 어울려 행복해 지도록 노력해야 해. 우린 꽤 잘 해왔단 생각이 드는데? 안 그러니?
케빈 : 네, 잘 해왔어요.
케빈 나레이션: 하지만 아빠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난 갑자기 많은 일들이 모두 이해됐다. 아빠는 여기서 일하기엔 너무 뛰어났다. 물론 좋은 직장이고 우린 운이 좋았고 그도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아빤 그의 내면에 S-14이나 유통 보고서보다 더 섬세한 무언가가 있었다. 난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의 아버진 훌륭한 분이셨다.
케빈은 아버지도 꿈이 있었고, 그 꿈은 여전히 아버지의 일상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케빈에게 아버진 더 이상 무섭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섬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아버지의 상사가 아버지를 질책하고 몰아붙이는 장면이다. 케빈 아놀드는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 날 밤, 아버진 언제나처럼 뒤뜰로 나간다. 아버지를 위로하는 상징은, 뒤뜰, 망원경, 별이었다. 뒤뜰, 망원경, 별이라는 상징물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긴 이야기를 케빈은 알게 되었다. 이제 아버진 케빈이 이전에 피상적으로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떤 꿈을 꾸었고, 지금 어떤 일상을 살며, 또 어떤 것에 위로받는 존재인지를 다 알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겉으로 표출하는 것 너머의 것을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의 긴 이야기가 담겨 있는, 당신을 위로하는 상징은 무엇인가.
그날 밤 아버진 늘 그러셨듯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자리에 서 계셨다. 하지만 갑자기 난 더 이상 같은 이유로 그를 두려워하진 않는단 사실을 깨달았다. 웃기게도 무언가 상실한 것만 같았다.
아빠: 이리 오렴, 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