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의 詩
복도를 지나다가 문득 벽에 걸린 시화를 봤는데,
내 마음에 쿵, 하고 뭔가가 떨어졌다.
어떤 아이 길래, 이 꼬맹이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시 감각을 타고 났을까, 싶었다.
비오는 날
김OO
하루 종일 비가 서 있고
하루 종일 나무가 서 있고
하루 종일 산이 서 있고
하루 종일 옥수수가 서 있고
하루 종일 우리 아빠 누워서 자네
그럼 평범한 시라고? 자세히 보라.
이 시는 이야기할 것이 너무도 많은 시다.
아이는 비오는 날의 풍경을 모든 것이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마지막 행에서,
모든 것이 서 있는 중에 누워 자는 아버지는,
외부 세계에서 서 있는 모든 것과 대비되면서
모든 자연과 맞먹는 무게를 지닌 존재로 부각된다.
또한 아버지는 비오는 날에 일하지 않고 자야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걸 우린 알 수 있지만,
시에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없다.
설명되지 않은 사실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시의 미덕이다.
비오는 날에 누워 자는 아버지에 대한 묘사를 통해
시를 읽는 이는 은근하게 풍기는 비애감에 젖는다.
외부의 '서 있는 것들'과 '누워 자는' 아버지는
대비되어 충돌하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어울린다.
자연은 그래야 하고, 일상의 아버지는 또 이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서 있는 것과 누워 자는 것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융화한다.
‘서 있는 비’ 는 저학년들의 그림에서는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글로 비 오는 풍경을 표현할 때,
비가 내린다고 표현하지 서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첫 행부터 기막히다.
이미지들에 대한 표현은 참 아이다우면서도
기발하다. 서 있는 것들로 내세운 이미지들은,
나무, 산, 옥수수다.
나무의 갈색과 녹색, 산의 푸름,
옥수수의 노란색과 연둣빛 껍질은
그 원색적 특성으로 인해 비가 오는 풍경 때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 이미지들은 모두 푸른색의 공통 색을
갖고 있어서 서로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각기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만약 옥수수 대신, 붉은 계열의 꽃을 썼다면
나무, 산과 융화하지 못하고 튀었을 것이며
나무, 산과 차별성이 없는 녹색의 이미지만
차용했다면 밋밋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정말로 탁월하게도, ‘옥수수’를 썼다.
이 시에는 리듬, 자연에 대한 성찰, 일상의 비애,
조화로운 시어, 그리고 반전까지 다 들어있다.
이토록 간결하고 가벼운 시에 말이다.
반전
예전 학교 복도에 걸려 있던 시화를 보고 썼던 감상평이다.
이 시는 놀라운 반전을 숨겨두고 있었으니.
감상평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시를 쓴 사람이 김용택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때문에 이 글은 감성적인 시 감상에서
‘아동 표절’로 주제에 일대 전환이 일어날 뻔했다.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김용택’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시를
발견하고는, 마시고 있던 써니텐을 뿜을 뻔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시를 김용택 시인의 시로
알았다면 잔뜩 흥분한 상태로 이런 감상평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 녀석(혹은 고 녀석의 부모님)을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동시를 보는 안목이다.
어쨌거나 좋은 표절자가 되려면 좋은 안목을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