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별도의 코디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갈 대학을 찾는 과정은 무척 복잡해졌다. 대학마다, 학과마다 전형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그냥 공부만 잘해서는 최상의 결과를 얻기 힘들어졌다. 이제는 ‘전략’이 필요하다. 같은 성적의 학생이라도 ‘전략’에 따라 다른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입시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건 어른들의 불안감이다.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불안하다. 뭔가 틀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엇나갈 것만 같다. 입시 방법에 따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가두는 틀의 모양이 달라질 뿐이다. 야간 자율 학습은 지금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맞춤형 틀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형태의 틀이었다.
야자엔 여러 주체의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다른 학교에 뒤쳐지면 어쩌지 하는 학교의 불안감, 우리 아이가 낙오하면 어쩌지 하는 학부모의 불안감, 아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각종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지 하는 교육 당국의 불안감, 이렇게라도 붙잡혀 있지 않으면 과연 내가 공부를 할까, 하고 생각하는, 자신의 의지를 낮춰보는 일부 학생들의 불안감까지.
이십여 년 전, 내가 고3이 되었을 때, 어른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불안감이 대부분의 친구들을 덮쳤다. 고2때까지만 해도 내 공부는 눈앞에 닥쳐온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고3이 되자, 내 공부가 나의 먼 미래까지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요즘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빠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염두에 두는 실정이니.) 눈앞에 입시가 다가와 있었고, 그것은 내 미래로 들어가는 관문을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결정적인 게 아니었지만.
점점 미래를 결정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아무렴 어때, 하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나이를 먹으면 뭐라도 되겠지, 하고 낙관하던 친구들도 슬슬 불안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여전히 고교생이라면 으레 통과해야 할 터널 속에 있었다. 실체 없는 불안감은 형광등불 아래서 팽팽한 긴장감으로 변했다. 딴 짓을 하는 친구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늘 동공이 풀려 있던 친구 앞에도 문제집이 등장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공부의 능률이 오르는 건 아니었다. 엄숙한 의식처럼 자습하는 행위 자체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고3이 되고 맘 편하게 딴 짓을 할 수는 없었지만, 야자 시간에 즐거운 이벤트 하나는 새로 생겨났다. 8시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햄버거와 콜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학교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학교에선 고3때 학급의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매일 간식을 넣어주는 관행이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정까지 야자를 했기 때문에 간식 없이는 버텨낼 수가 없었다. 난 전년도처럼 10시면 학교를 나섰지만, 동일한 햄버거의 축복을 받았다.
햄버거는 학교 근처의 빵집에서 배달되어 왔다. 온기는 없지만 속이 꽉 찬 제과점 햄버거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고3 야자 시간하면 연상되는 3개의 이미지가 흰 벽, 시험지, 햄버거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매달 한 번 꼴로 햄버거를 반에 넣어주셨던 어머니가 내 머릿속 이미지를 들여다보셨다면 깜짝 놀라셨을 것이다.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 종합 영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햄버거를 보시며 내가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자괴감이 든다 하셨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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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를 달랑 먹고 10시에 귀가하는 게 양심에 걸려서 몇 달간 독서실에 다녔던 건 아니었다. 고3이 되자 자정까지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10시에 학교를 나서려면 다른 학습 계획을 밝혀야 했다. 나의 선택은 독서실이었다. 어쨌거나 10시면 학교를 나서고 싶었다. 흰 벽 아래서 그 이상을 버티긴 무리였다. 친한 친구와 함께 독서실을 등록하면서 본격적인 입시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다부진 동기도 없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동기는 독서실 휴게실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독서실의 남루한 휴게실에는 소파 몇 개와 둥근 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그 탁자 위에 장기판과 말이 있었다. 친구와 나는 독서실에 도착하면 각자의 자리에 가방을 두고 휴게실로 나왔다.
“장기 한 판 두고 머리 식히고 들어가자.”
사방이 막혀 있는데도, 나만의 궁안에서 나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애썼던 그 때.
누가 한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둘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 예정했던 한 판은 두 판이 되고, 세 판, 네 판, 여러 판으로 이어졌다. 문제집 문제 대신 장기판 위의 문제를 풀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12시가 다 되곤 했다. 지친 심신으로 자리로 돌아와 문제집을 펴들었다. 두 문제쯤 풀고 나면 잠이 쏟아졌다. 잠시 엎드려서 졸음의 요구를 들어주면 12시 30분, 독서실에서 운행하는 귀가 봉고차 출발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다. 새벽 1시쯤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계시다가 간식을 주셨는데, 간식을 먹으며 장기를 아깝게 졌던 판의 악수(惡手)를 떠올리기도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땐 내 삶의 장기판이 어떤 형세가 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못했다. 날마다 두는 수가 악수인지, 묘수인지도. 내 고교 시절 장기판의 복기는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후에야 이루어졌다.
P.S.
야자 시리즈 에세이의 마지막 챕터입니다. 다음 편에 종결됩니다.
12월입니다. 스팀잇을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 가네요. 올 한 해는 제 일상에 스팀잇이 깊이 들어와서 쉬지 않고 글을 썼던 의미 있는 한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작년 스팀잇을 시작하며 느꼈던 설렘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