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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11월, 내가 주로 글을 쓰던 SNS는 페이스북이었다. 국정농단으로부터 비롯된 뉴스들이 들불이 번지듯 연일 게시판을 뒤덮는 사이에 페이스북엔 개인들의 삶과 이야기가 지워졌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한숨에 동참한 보통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사건의 추이를 지켜봤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시점이 있었다.
아침 해가 뜨면 새로운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었다. 정의 실현은 아직 요원해 보였지만, 숨죽인 채 열흘 정도가 지나자, 이제 다시 '개인'들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반가웠다.
이미 최순실과 그의 패거리들은 자신들의 성을 쌓고 많은 사람들의 삶과 기회를 빼앗았다. 재작년 11월, 그 열흘의 페이스북은 그 패거리들이 '빼앗은' '개인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참아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나의 에너지를 그들의 추악한 뒷면을 살피는데 쓰도록 했다. 나의 시간을 분노로 채웠으며, 내 개인적인 일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로 인해 이 땅의 상식적인 사람들의 삶은 사소해져 버렸다.
개인들의 시간과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는 강탈당했고, 그 강탈은 오래 지속되었다.
우리는 거리로도 나가야 했고, 게시판에서도 정의를 외쳐야 했지만, 그들 패거리가 일으킨 일이 결코 우리의 삶을, 개인들의 이야기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 되었다.
쉬이 잊어서도, 의로운 분노를 멈추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지가 닿는 영역까지다. 내 의지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도 그들이 풍기는 냄새에 취해 있진 말아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정농단’이 뒤덮은 페이스북에서 열흘이 지나고야 간간이 보였던 개인의 삶이, '나의 이야기'들이 반가웠다. 숨죽이고 있다가 조금씩 고개를 드는 소소한 삶의 장면이 그렇게 귀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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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스티밋을 뒤덮었던 어뷰징에 대한 논쟁들을 보면서, 페이스북에서 개인들의 삶이 지워지고 덮였던 재작년 11월이 생각났다.
누가 최순실이고, 누가 정의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안타까움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숱한 말과 쟁들이 오고 가는 동안 많은 이들은 자신의 삶을 꺼내놓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뜨겁게 타오른 논쟁 앞에서 나의 일상은 너무도 가볍고 사소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역설할 것이다.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정의를 세우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더하는 것만이 플러스의 길이 되는 게 아니다. 난 그때만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켜켜이 쌓인 논쟁에 나의 말 하나를 더하지 않음이 이곳에 플러스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토론이 아니라, 전쟁을 외치고 있었다. 여러 번의 거듭된 논쟁 속에서 이미 공론은 확인되었고, 암묵적인 합의도 있었다. 논쟁을 촉발시킨 당사자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지난 번 떠날 것을 선언하고 문을 나설 때 이미 도덕적 우위는 확인되었다. 무엇이 이곳에 더 이로운가, 하는 프레임도 도덕적 우위에 있는 쪽이 쥐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웃들은 그 쪽이 다시 돌아온 것을 환영이라도 해주듯 논쟁을 끝없이 확장시켰다. 저마다 날카로운 창을 자랑하며 달려들었다.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에, 누가 봐도 우위에 있는 싸움에, 결연한 표정으로 뛰어들었다. 무엇을 더 확인해야 했던 것일까.
그러는 사이, 개인들의 일상은 지워지고 삶의 이야기는 사소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 싸움은 우리들의 사소한 삶의 이야기를 지켜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당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그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방법에 대한 논쟁이 아니었던가. 여러 번에 걸쳐 반복되는 논리와 싸움이 지속되는 한, 지키고자 하는 걸 결국엔 잃어버릴 것이다. 지키고자 하는 걸 잃어가면서 하는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 앞 골목에서 고성이 들리고,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를 듣고도 편히 앉아서 시를 읊거나 강아지를 그릴 수 있는 이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어준 이웃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건 어렵고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우리의 일상은 사소해보이지만, 삶은 가벼워 보이지만, 우리 삶이 당신의 입으로, 글로 이야기될 때는 결코 사소하거나 가벼운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 이곳이, 우리의 이야기를 사소하게 취급하지 않는 곳이 되길 소망한다.
난 많은 이웃들이 논쟁과 싸움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일들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의 수고를 봐서라도 누군가는 일상을 계속 말하고 누군가는 시를 읊고 또 누군가는 이웃과 콜라보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