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장
돈 없고 시간은 많던 이십대에는, <홈더하기> 같은 대형마트가 오갈 데 없는 청춘의 쉼터 역할을 했다. 생활권이 비슷한 친구들과의 만남은 주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친구들과 모임을 마치고 늦은 밤 들르는 곳도 이곳이었다. 식품 매장에서 사온 순대나 튀김을 영업이 끝난 푸드 코트 식탁에 풀어놓고 요기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이십대의 우리들은 짝사랑하는 교회 자매나, 우스꽝스러운 괴소문들이나,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등의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렸다. 우린 서로의 어설픈 멘토가 되었다가, 사랑의 카운슬러가 되어주기도 했는데, 서로가 해준 조언을 들었다가 첫 데이트에서 폭망했던 얘기는 만날 때마다 끝없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들을 때마다 우린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어떤 때 우린 그곳에서 날을 넘기기도 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푸드 코트에서 수다를 떨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청소카를 탄 아저씨만이 푸드 코트 주변을 오락가락 할 뿐이었다.
약속 장소로도 더할 나위 없었다. 기다리면서 밥값에 육박하는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되었고, 조금 늦는 친구가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매장을 둘러보고 있으면 되었으니까. 그래서 많은 시간을 이십대의 나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보냈다.
고독의 둥지
<홈더하기> 마트는 만남의 장이기도 했지만, 도서관과 맞먹는 ‘고독의 둥지’이기도 했다.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 당시 도서관의 위상을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도서관은 내 상태와 목적과 관계없이 언제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는 점에서 가장 포용적인 공간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지만, 언제나 내가 머물 수 있는 나만의 자리와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타적인 곳이다. 이곳은 생산력이나 효율을 강요하지 않고 멍하게 보내는 시간도 인정해주고 기다려준다. 안정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침묵이라는 편의를 제공한다. 날마다 책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갖고 돌아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도서관은 내게 최고의 공간이다.
이 정도의 위상을 가진 도서관에 비견될 정도였으니, 그 시절의 대형 마트의 의미가 내게 얼마나 컸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 대형 마트의 위상도 따지고 보면, 책과 서점의 존재로 비롯되었다. 대형 마트 안에 있던 대형 서점에선 곳곳에 놓인 푹신한 소파에 몇 시간이고 퍼질러 앉아 새 책을 뒤적거려도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서관처럼 내게 대단히 포용적인 공간이자 생산성을 강요하지 않는 유희의 장소였던 것이다.
대형마트는 집에서 내가 주로 활동하는 생활권의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이곳을 지나치게 되어 있었다. 대학 시절 방학이 되면, 길을 오가다가 이곳 대형 서점으로 들어가서 푹신한 소파에서 책을 펴들고 읽곤 했다. 오가는 길 30분은 이곳에 들러 책을 읽는다는 식으로 일정표에 달콤한 자투리 독서 시간을 넣기도 했다. 책은 여러 번 나눠서 읽어야 했다. 어떤 책은 며칠 동안 드나들면서 연속극처럼 연결해가며 읽어나갔다.
도서관에서 읽는 것과 또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불티나게 대출되어 손에 쥘 수 없는 신간이 이곳엔 몇 권씩 있었다. 신간들이 내 손길을 받고 싶어 아우성을 쳤다.
맘먹고 책장을 넘기려는데 근처 중학교 학생들이 옆의 소파에 주렁주렁 매달려서 수다라도 떨면,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책장을 펼치긴 했지만, 귀는 자꾸 아이들의 수다를 향한다. 내가 왜 그 학교 쫀드기 선생님의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하며, 재수 없는 반 친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싶다는 섬뜩한 고백을 들어야 하는가. 처음엔 마음이 편치 않아서 떨렸던 몸이, 나중엔 섬뜩함을 느끼고 떨렸다. 위대한 중2 아이들은 전혀 내 눈치를 보지 않는다. 결국 내가 조용히 자리를 옮겨 먼 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가끔 그런 난관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그 곳은 나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위상의 추락과 새로운 위상
안타깝게도 하루 중 펑펑 쓸 시간이 별로 남지 않는 삼십대가 되자, 대형 마트의 위상은 추락했다. 급기야 대형 마트 설립을 반대하는 소상공인과 별반 차이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아주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살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대형 마트를 가는 것은 꽤나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다. 일단 대형 마트는 웬만한 학교 강당보다 크다. 구획된 매장들 사이로 이동하며 원하는 물건 하나를 골라서 계산하고 차 있는 데까지 돌아오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이 드는 것이다. 한두 푼의 돈을 아끼는 대신, 서너 푼의 시간을 써야 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주 많은 양의 물품 구입 건의 아니라면, 오가는 길에 있는 작은 동네 마트에 들러 물건을 산다. 대형 마트 위상의 추락 저변에, 자투리 시간이 절실해진 나이의 씁쓸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후 대형 마트는 아이가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고,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하는 곳이 되었다. 이십대와는 또 다른 위상을 갖게 되었다. 카트에 아이를 태우고 한 바퀴 돌면서 시식을 하고, 쇼핑을 하면 시간이 잘 간다. 아이와 부모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내 청춘기의 웃음과 고독이 묻어있던 대형 마트가 여전히 그곳에서 우리 가족의 발걸음을 불러들이고 있다. 내 웃음과 고독 위로 아이의 웃음과 발소리를 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