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온 힘을 다해 팔다리를 내젓는다. 3.8km를 헤엄쳐 왔다. 중간에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1800m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날 뻔 했다. 쥐는 다리에 들러붙기 직전에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스쳐지나갔다. 잠시 멈춰서 쉬고도 싶었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춘다면, 그 자리에서 아주 오래 쉬게 될 거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 100m 남았다. 저 멀리 깃발이 보인다. 다른 선수들도 저 깃발을 보고 더욱 힘을 내겠지. 선수들이 일으키는 물거품이 더욱 많아진다. 이 수영을 끝내는 방법은 결승점까지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 멈춘다면, 헤엄쳐 왔던 3.8km는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고 아무런 의미 없는 거리가 될 것이다. 나머지 100m가 3.8km를 완성한다.
5m를 남겨 놓고 수심이 얕아졌다. 이제 일어선다. 물의 저항을 허벅지로 맞서며 결승선까지 내달린다. 깃발을 향해 손을 뻗는다. 깃발을 넘어선 순간 그는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출전한 것은, 수영대회가 아니었다. 그는 철인3종 경기에 참가한 것이다. 깃발은 결승점이 아니었고, 바꿈터(철인3종 경기에서 종목이 바뀌는 지점)였다. 바꿈터엔 작은 자전거 한 대가 서 있었다. 아직 그의 앞엔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의 거리가 남았다. 그걸 깨달은 순간, 함께 물살을 가르던 선수들도, 등 뒤에 있던 호수도 사라진다. 깃발을 통과한 그는 홀로 서 있다. 그는 자신과의 레이스를 펼쳤다. 그는, ‘작가’라는 선수다.
글쓰기는 단일 종목이라기 보다, 여러 종목이 혼재된 철인3종 경기에 가깝습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게 글을 써서 출간하는 과정은 수영이나 마라톤의 단일 경기가 아닙니다. '초고 쓰기'의 호수를 건너온 그는 이제 '고쳐 쓰기'라는 새로운 레이스에 돌입해야 합니다.
퇴고라고도 부르는 이 과정은, 초고를 쓰는 일보다 덜 중요하거나 금세 끝낼 수 있는 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보통 짧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그런 인식이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지는 글, 즉 앞부분과 뒷부분의 인과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긴 분량의 글을 쓸 때 이 고쳐 쓰기는 초고 쓰기보다 더욱 무겁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초고를 펼쳐 든 작가들은 새로운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작가들이 말하는 고쳐 쓰기
인상적인 책을 쓴 여러 작가들은 고쳐 쓰기에 대해 힘주어 말하곤 합니다. 그 중 레이먼드 카버의 인터뷰를 읽고 그동안 ‘고쳐 쓰기’를 홀대하던 저는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되었습니다. 초고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쳐 쓰기의 과정이라는 걸 레이먼드 카버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입을 모아 역설합니다.
일하는 시간의 많은 부분은 수정하고 다시 쓰는 시간이지요. 집 안 어딘가에 놓아둔 이야기를 가져다가 다시 수정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지요.
어떤 이야기의 초고를 쓰는 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아요. 대개 한 번에 앉아서 쭉 쓰지요. 하지만 그 이야기의 각기 다른 다양한 수정본을 만드는 건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한 단편에 스무 가지나 서른 가지의 다른 수정본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열 개나 열두 개 이하인 경우는 없답니다. 위대한 작가들의 초고를 보는 건 아주 배울 점이 많고 마음에 용기를 주는 일이지요.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가 ‘위대한 작가들의 초고를 보는 건 마음에 용기를 주는 일’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초고는 위대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뛰어난 작가의 글이라도 초고는 조악하고 거칩니다. 글은 수정해야 그저 그런 돌에서 수정(rock crystal)이 됩니다. 퇴고를 거치면서 조악했던 초고는 그 위대한 빛을 점점 발하게 됩니다. 작품의 질은 대부분 이 과정에서 결정됩니다. 이 과정에 아주 공을 들인 레이먼드 카버는 다른 작가의 퇴고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수정을 좋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수정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그는 마지막 교정쇄에서는 수정을 거듭했답니다. 『전쟁과 평화』는 여덟 번이나 수정했고, 마지막 교정쇄에서도 여전히 수정했어요. 이런 걸 보면 저처럼 초고가 엉망인 작가들이 용기를 낼 수밖에 없지요. -레이먼드 카버
수정의 과정이 있어야, 수정 같은 글이 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쪽을 서른아홉 번이나 고쳤다는 건 꽤 많이 알려진 일화입니다. 헤밍웨이는 초고를 쓰고 매일 그 쓴 부분을 고쳐 썼으며, 초고를 끝내고도 여러 번 고쳐 썼습니다.
고쳐 쓰는 횟수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작가들이 있지만, 하루키의 경우 책을 쓰는 일정 속에 아예 고쳐 쓰는 기간을 둘 정도입니다. 하루키는 대게 몇 번이나 수정을 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하지요. 초고를 쓰는데 6개월을 보내고, 수정하는데 6~7개월을 보냅니다.”
소설을 써본 누군가가, “아 제 소설은 뭔가가 빠진 거 같아요. 제 에너지를 다 쏟아내어 필생의 역작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어요. 전 재능이 없나 봐요.” 이렇게 단정 짓고 소설쓰기를 때려 치기 전에, 이 질문에 한 번 대답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쳐 쓰는데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가?”
재능하면 두 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만한 작가들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공들여 초고를 고쳐 씁니다. 이 원리는 짧은 글을 쓰거나, 에세이를 쓸 때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내 글이 지금보다 조금 더 정제된 형태로, 한 계단 더 올라서면 좋겠다는 열망이 있다면, 고쳐 쓰기에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한 번 쓴 글을 다시 들여다보기 싫다면, 왜 내 글은 더 나아지지 않는 거지? 하는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고를 다시 읽다보면 뭘 고쳐 써야 할지 보입니다. 퇴고라는 걸 모르고 살던 사람이라도,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더 잘 고쳐쓰게 됩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글쓰기에 훈련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고 가치 있는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훈련으로 길러야 할 글쓰기 역량엔 이 ‘고쳐 쓰기’의 능력도 포함됩니다. 그냥 포함되는 정도가 아니라 꽤 큰 비중을 차지하지요.
레이스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더 길지도 모르는 길을 가기 위해 얼른 올라타야 합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글을 써 오면서, 호수만 건너면 결승점이 보일 거라는 착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입니다. 호수가 지나면, 새로운 길이 시작됩니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자기 자신과 레이스를 펼치는 작가라면, 새로운 길을 각오해야 합니다. 얼른 물을 털고 자전거에 올라타야 하지요.
저에게 있어 예전에 썼던 긴 글들을 퇴고하는 일은, 새로운 글의 초고를 쓰는 일과 더불어 글쓰기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서, 참새 눈물을 쪼개 쓰는 식이지만요.) 고쳐 쓰기는 작품에 따라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호수 하나는 건넜다는 안도감 속에서 일할 수 있으므로 즐거운 일과에 속합니다. 이제 이 글을 하나 끝냈으니, 다음은 퇴고할 원고의 파일을 열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