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가 씩씩대며 내게 온다. 화가 많이 났다. 아이는 내가 묻기도 전에 감정을 토로한다. 주은이가 체육 시간 마치고 교실로 같이 오기로 해 놓고 혼자 갔어요! 마침 주은이가 다른 친구와 교실로 들어온다. 수민이는 주은이를 향해 비난을 퍼붓는다. 선생인 나의 제지도 소용없다. 그 흥분과 분노는 4학년의 수준을 감안하고도 가끔은 이해 불가다. 수민이와 난, 자주 벌어지는 이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대화를 반복한다.
"수민아 주은이가 교실로 혼자 와서 속상했구나."
"네 쟤는 맨날 그래요. 나랑 오기로 해놓고 도망갔어요."
옆에서 주은이가 억울한 듯 말한다.
"선생님 저는 그런 약속 한적 없어요. 수민이는 늘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이렇게 화내요."
"수민아 주은이하고 확실히 약속한 게 맞니?"
"네 분명 말했어요!"
“주은이가 혼자 간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혼자 갔어도 이렇게 교실에선 같이 만나잖아.”
자주 반복되는 대화는 대강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수민이가 주은이를 두고 쏟아내는 분노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진행되는 양상은 비슷하다. 상황에 따라 내 어조는 달라지기도 한다.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있을 때, 그 아이가 와서 한바탕 분노를 쏟아내면, 또 너냐, 하는 마음에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 소동 뒤가 허탈해지는 이유는, 한 시간 수업이 지나면, 수민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주은이 옆에서 깔깔대고 있다. 난 그런 수민이를 보며 나직이 읊조린다. 아까 우리 뭐 한 거니?
주은이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 아이다. 공부를 잘 한다거나, 외모가 예쁘다던가, 흔히 인기 있는 아이들이 가진 요소를 가지고 있진 않다. 주은이는 공부는 중상급 수준이고, 외모는 통통하고 푸근하게 생겼다. 주은이의 매력 요소는 성격에 있다. 어느 누구와도 마찰을 일으키는 법이 없다. 부드럽고 포용적이다. 우리 반 여학생은 총 10명인데, 5명씩 두 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키가 좀 큰 아이들이 한 그룹, 그리고 주은이를 중심으로 작은 아이들이 모인 한 그룹이 있다. 주은이가 주축이 된 이 그룹 아이들 사이엔 갈등과 마찰이 잦다. 모두 주은이를 둘러싼 질투에서 비롯된다. 다들 서로 친하면서도 주은이와 더 친하려고 하는 게 문제다. 그 중에서도 수민이는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고, 주은이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다른 아이들과 자주 마찰을 일으킨다. 수민이의 애착은 때로 집착으로 보이기도 한다. 수민이는 주은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사랑을 독차지 하려고 한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뿐 아니라 주은이한테도 독설을 퍼붓는다.
주은이는 이런 수민이를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반목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난처해하기도 한다. 우유부단한 면도 있어서, 이 친구와 이 약속을 했는데, 저 친구가 또 약속을 하자고 하면 거절 못하고 우물대다가 의도치 않게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래도 이 작은 여자 아이들 그룹은 삐걱거리면서도 지금까지 함께 왔다.
가끔 심하게 싸웠을 때는 남아서 상담을 한다. 수민이는 단골손님이다. 수민이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수민이는 사랑을 투쟁적으로 한다. 수민이에게 소중한 사람을 얻는 과정은,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 마음을 결박해서라도 나만 바라보게 하겠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표출한다. 수민이와 상담을 할 때는, 싸우고 갈등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수민이의 마음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한다. 싸움과 갈등은 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민아, 주은이가 좋아서 명화와도 싸운 거지? 주은이하고 둘이만 있고 싶어서?”
“네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그렇게 하면 주은이가 좋아하는 것 같니?”
“…….”
“수민이는 나를 어떻게 대하는 친구가 좋니? 혹시 수민이에게 내게 자주 간섭하고, 나하고만 있자고 요구하고, 내 주변 다른 친구들과 자주 싸우는 친구가 있으면 어떨 것 같니?”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 사람 마음은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누군가가 날 좋아하게 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면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선생님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네.”
내가 보기엔 진심어린 대답이다. 내 말이 4학년 아이에게 어려웠을 수는 있으나, 수민이에겐 별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수민이는 듣고 이해하고 말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수민이는 영특하고, 언변이 뛰어나다. 공부는 물론이고, 토론에서 당할 아이가 없다. 손은 또 얼마나 야무진지,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란다. 글도 잘 쓴다. 1학기 때는 반장도 했다. 재능과 스펙만 봤을 때는, 최고의 인기를 누릴 것 같다. 하지만, 2학기 반장 선거에서 단 한 명의 추천도 받지 못해서 후보로도 올라가지 못했다. 그 뛰어난 재능이 빛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선을 받지 못하고 홀로 우뚝 선 동상 같다. 그래서 수민이가 안타깝다.
수민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면, 마음을 얻기 위해 처절하고 절박하게 구는 대신에 좀 여유로울 수 있다. 잔잔하게 바라보는 법도 알게 되고, 때론 고백하며 밀어붙이는 것보다 기다렸다가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이 더 훌륭한 마음의 고백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잦은 다툼 때문에 수민이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수민이의 학교생활, 주은이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죽 이야기했더니, 수민이 엄마는 당혹스러워 하며 말했다.
“놀랐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수민이에 대해서 말씀 하신 게, 제 모습 같아서요.”
난 가끔 아이가 이해되지 않을 때, 아이의 부모님을 만났을 때, 완전히 이해되는 경험을 종종 한다. 내가 의문을 가졌던 아이의 눈빛이, 내가 이상하게 여기던 아이의 말과 행동이, 그 부모님을 만났을 때 재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진다. 아, 얘는 이럴 수밖에 없겠구나. 이 아이의 모습은 엄마의 모습이구나. 아빠를 보고 자라서 그렇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부모를 삐딱하게 보게 되는 게 아니다. 내가 상대하고 지도할 대상은, 부모가 아니고 아이다. 학부모에게 받은 인상은, 아이에게 무엇을 줄지, 무엇을 말할지를 알게 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개학하면 다시 수민이의 투쟁은 시작되겠지만, 난 수민이를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랑을, 우정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니, 방법은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 인류가 해왔던 투쟁 중에 가장 가치 있는 투쟁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수민이의 투쟁에 자그마한 여백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