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무례함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서 최소한의 예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재빨리 해결해야하는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상황이 해결되고 난 뒤에, 한번쯤 어떻게 잘 해결되었는지에 관하여 연락을 주는 것이 예의다. 그렇지 않으면 나로서는, 이 관계를 정말로 이해타산의 관계로 여기고 거리를 멀찍이 두게 된다. 필요할 때에만 찾는 일방적 관계.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대체로 내가 아쉬운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굳이 내가 먼저 거리를 좁히려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님의 '무례함에 대하여'라는 글은 한번쯤 찬찬히 읽어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친하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민이 이미 마련된 관계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친하다는 것은 언제나 나의 관점이며, 실제로 친함에 대한 거리와 친한 것처럼 보이는 거리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러한 거리는 항상 조절된다. 정지된 채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기억의 한 때에서만 그러하다.
나는 사람들마다 관계를 맺을 때, 어느 거리까지가 적절한지를 가늠한다. 그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친하다'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거리를 두면, 거리에 비례하는 완충 영역이 생긴다. 예를 들어 생판 모르는 남이 갑자기 나에게 욕을 하더라도, 나는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거리가 멀고 영역이 넓기 때문이다. 무척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아쉬움을 표현하면, 나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 그리 아쉬웠는지 곰곰히 생각하고 내 행동에 잘못된 점이 있었다면 (서서히라도) 고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적절한 거리는 결국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거나 행했을 때에 내가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영역을 나타내는 것과 동일하다. 나에 대해 누군가 무례하게 행동한다면 나는 그를 멀찍이 떼어놓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거리를 무한대에 준하게 놓을 수도 있겠다. 여기서 상당히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음의 값을 가진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가 있다면 그냥 무한대로 놓으면 될 일이다. 예전에는 그 마이너스의 관계를 플러스로 되돌려 놓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면, 지금은 그냥 저멀리 놓아두면 그만이다.
무례함은 대체로, 상대방이 나에 대해 그리는 적절한 거리가 상대방에 대해 내가 그리는 적절한 거리보다 가까울 때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적절한 거리는 이만큼이므로, 이정도는 감수해야지'와 같은 (상대방이 나에 대해
가지는) 완충의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거리 감각은 대체로 자주 소통할 때에 비로소 맞추어지는 것이다. 뜸하게 소통하더라도 거리 감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 상대방에 대한 성의와 애정이 있어야 - 적절한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무례함은 대체로, "과거의"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지금의 실제 거리보다 더 가까운 거리라고 믿고 행동할 때에 일어난다. 각자 가지는 거리의 관점과 감각에 대한 탐색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과거의 감각만 믿고 관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무례함과 친근함은 사실 한 끝 차이다. 같은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결국 무례함을 가리게 되는 것은 관계에 대한 거리로부터 나온다. 일순간 무례를 범했다면, 적절한 거리를 더 가깝게 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상대방을 조금씩 알아가려할수록, 이해하려 할수록, 공감하려 할수록 거리는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무례는 무례대로 범하고 거리는 거리대로 내버려두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