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적는다는 행위가 애초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이를 포괄하는 삶을 드러내는 방식 중 하나일 경우가 많아서, 글은 결국 말하기와 내보이기를 위한 매체에 적합하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효율적으로 일상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잘 골라내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심하게 된다. 눈에 띠는 제목을 찾아보거나, 초반의 시작이 흥미롭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최소한 그간의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괜찮았다고 느껴지는 작성자의 글을 위주로 읽게 된다.
어쩌면 자신의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낭비"로 여겨진다는 것이 슬픈 일일 수 있겠으나, 애초에 모든 발화가 같은 중량감으로 같은 때에 닿을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적는 글 또한 누군가에는 쓰레기가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럭저럭 들을만한 글이 되는 것이다. 닿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닿아서 버려지는 것보다 나을 상황이 올 때도 있다. 물론 그런 반응이 글쓴이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래서 꾸역 꾸역 뭐라도 쏟아내는 것이겠지만.)
애초에 듣기를 위한 글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소재 같은 건 없는 것이다. 촘촘한 정보의 맥락 대신, 성기게 배치된 파편들 - 여백들만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아무런 의미나 핵심은 지시되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와 '듣기'는 - 독자들의 반응을 듣기 위한 글쓴이의 선택적 듣기를 제외하면 - 서로 어울리기 힘들지만, 어떤 글이 글쓴이의 '듣기'를 위주로, 독자의 '말하기'를 위주로 전개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실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글'이 아니다. 변기도 파이프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