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아이가 나에게 그랬다.
"나도 성폭행 당해봤어"
"뭐라고?"
"나도 당해봤다구."
"..누구한테?"
"남자친구한테."
그 아이는 스물하나였다. 나라는 아이도 고작 스물셋. 스물하나와 스물셋의 대화가 사회에 대한 한탄이었다. 왜 안심할 수가 없을까. 그들은 왜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나. 내가 사귀었던 사람 중 두 사람도 성폭행, 추행을 당해본 경험이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었던 건, 잠시나마 그녀들의 인생 한 켠에서 담요를 덮어주는 일 밖에.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드문 줄 알았다. 군대에서 본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해 아주 심도 있게 다뤘었다. (시간 나면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 여자뿐만이 아니라 남자도 그런 끔찍한 경험을 겪은 자들이 많았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본능적인 행동들이 많이 배설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완전 똥 천지였다. 내 옆에 있었던 그녀들의 경험들은, 항상 웃음으로 무마되었던 것 같다. 둘이 있을 땐 매일 행복했던 기억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좋지 않은 기억들이 낄 자리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고서 그때서야 느꼈다. 참 한심하지, 나도.
2
여성은 성적 대상화가 되기 쉬운 것 같다.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야, 남자들은 웃통까고 바다에서 논다이가."
"어, 근데 그게 왜?"
"근데 왜 여자는 안그라는데?, 아니 못 하노?"
"어.. 내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봤을 땐 있다이가, 다른 게 차별이 아이고 내가 봤을 땐 그게 차별이다."
"뭐가?"
"사람들 시선."
여자들은 브라를 찬다. 남자는 차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가 노브라로 밖을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것들이 이상하다. 왜 그래야 하는가. 다 똑같은 사람 '젖꼭지' 인데 말이다. 잘 모르겠다. 그냥 여자들이 조심하거나 남자들이 그런 불편한 시선을 거두거나 해야겠지. 뭐, 이러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인식에 대한 문제를 청원 올려서 '여자는 노브라로 밖을 돌아다니면 안된다.' 라거나 '여자도 노브라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줘라.' 이런 식으로 논의를 해야되나? 난 잘 모르겠다. 그냥 다 같은 '젖꼭지' 니까 평등해야 한다고 본다.
남자들도 분명히 불편한 경험들이 있다. 남자로서 해야된다는 사회에서의 압박감. 예를 쉽게 들면, 군대. 그 외에도 '남자가', '남자라면' 으로 포장되어 남자에게 책임감을 떠맡기는 경우도 많다. 여자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은 그냥 사람들의 생각을 가둬둔다는 것으로도 보인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시선' 이 그렇게 무섭나보다. 사람들은 나름의 목적을 두고 행동을 한다지만, 나와 똑같은 사람들을 거스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남자나 여자나 말이다. 다 똑같은 '사람들' 인데. 그래서 우린 계속 논의를 해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서로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아, 덧붙이자면 군대와 브라를 비교한 건 아니고 시선에 대해 비교를 한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솔직히 난 잘 모른다. 근데 그냥 경험을 바탕으로 어줍잖은 생각들을 써봤다.
3
나도 성폭행까지는 아니고, 성추행은 당해본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 였나, 여자애들이 귀엽다고 몇 명이서 내 엉덩이를 만지고 볼을 만졌다. 귀가 느낌이 좋다며 당기며 장난감 삼아 놀기까지 했다. 그리고 농구와 축구를 했던, 내 몸이 좋아보인다며 교복 셔츠를 벗기려 했던 기억도 존재한다. 그걸 쳐다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다행히도 보지 못했다. 그 땐 몰랐지. 아무것도.
4
옛날 신석기, 구석기 시대에는 식량난이 닥쳤을 때 여자나 노인, 아이들을 잡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제일 연약하고 집단에서 쓸모 없는 존재들을 식량으로 대체해버린 것이다. 노인은 병들어 맘모스를 잡지 못한다. 여자는 채집을 해야하는데, 어차피 남자가 해도 된다. 열매가 나지 않는 때엔 맘모스 못 잡으면 쓸모가 없다. 아이는 제일 안타까운 케이스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고, 뭐든 축내기만 한다. 생존을 위한 집단에서는 쓸모가 없다.
시간이 흘러 자본이 곧 능력이 되는 세상에서는, 능력없는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여야 안정감 있게 살 수 있었다. 예쁘게 화장하고 몸매를 가꾼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외모를 다른 것보다 우선시 하게 된 것.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를 판단할 때, 외모를 보고 여자들이 남자를 판단할 때는 경제력을 본다.' 이런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닌 것이다. 자연스레 사회적인 기능으로서의 남자는 책임감이 더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람을 '판단' 하는 사회는 아니다. 인격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싶다. 예쁘다, 못생겼다, 얘 나쁜놈, 쟤 나쁜 놈 아직도 들려온다.
5
공부를 하려 했는데, 갑자기 여러가지 썰들이 떠올라서 써봤다.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도 난 그냥 쓴다. 쓰다 보면 글도 내 자신도 뭔가 나아지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