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의 약속
대한을 앞둔 겨울밤 비가 내린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하늘이 알았을까
이대로 봄이 오기를 바란다면 철부지라고 하려나
조용히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법 소리까지 내면서 내리기를 몇 차례
새벽이 되면서 약해지다 차츰 그쳤지만
하늘은 아직도 뭔가 남은 일이 있는 듯하다.
새벽잠이 들었다
잠결에 알람소리를 죽이고 깊은 잠에 빠진다.
모처럼의 게으름은 꿀맛이다.
서둘러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나간다.
비에 씻긴 길은 깨끗하고 봄날처럼 포근하다.
몇 발자국을 떼었을까 걸음이 미끄러진다.
여기저기 미끄러워 마음 놓고 걷다가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포츠쎈터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미끄러워서 혼났다며 조심해서 살살 걸어야 한다며
때 아닌 비에 겨울도 다 갔다고 하자 이제 추위는 하나 남았다며
겨울이 아무리 극성을 떨어도 세월 앞에서야
버티는 재주가 있겠느냐며 눈 치우느라 힘들었던 얘기
추위에 수도가 얼어서 억지로 녹인 얘기로 꽃을 피운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다는 말처럼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깝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랜만에 국수를 먹고 나가 바깥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아 시원하다 하는 소리가 나온다.
우리의 오감은 작은 욕구에도 반응한다.
가까워진 봄이 나직한 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조금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