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역사 기술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어린 시절 학교에 일기를 써가지 않아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뭘 쓰긴 써야 하는데 다른 날과 차별되는 특별한 일이 없어서 아침부터 밤까지의 일을 죽 나열해서 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선생님으로부터, “한 가지 일이라도 자세히 써보세요.” 하는 코멘트를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일기가 ‘매일의 작은 역사’라서 그럴 까요. 우리 중 대부분은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역사 기술의 3가지 방법 중에서,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는 ‘편년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자세히 써 보라는 선생님의 조언은, 역사 기술의 방법 중에 ‘기사 본말체’로 쓰라는 주문에 가깝습니다.
내친김에, 역사 기술의 3가지 방법을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역사 기술에서 가장 오래된 방법은 연,월,일 시간 순서대로 일어난 일을 나열하는 ‘편년체’입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나오기 전까지, 거의 모든 역사서는 편년체로 기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방법으로 기록된 책은 ‘조선 왕조 실록’이 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새로운 기술 방법으로 역사를 서술하는데, 이 기술 방법이 바로 여러 인물의 전기를 통해 역사를 드러내는 ‘기전체’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한 ‘본기’와 신하나 본받을 만한 인물을 중심으로 기술한 ‘열전’ 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물 중심의 역사 기술 방법인 기전체로 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서는 ‘삼국사기’가 있습니다.
끝으로, 어떤 사건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관련된 기사를 모아 사건의 경과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기사본말체’가 있습니다. 사건 중심인 신문 기사와 서술 방식이 비슷하여, 기사본말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요.
역사의 서술 방식이지만, 우리가 일기 쓸 때와 아이들의 일기 쓰기를 지도할 때 이 세 가지 방법을 꽤나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일기는 일정한 형식 없이, 솔직하고 자유롭게 쓰면 되는 것이지만, 쓰는 방식은 적절한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일이 일어난 시간 순서로 쭉 쓸 수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만난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쓸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날은 특정한 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글쓰기에서 일기로 얻을 수 있는 것
어린 시절, 그렇게 지겨워했으면서도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런 구속도 없는 상황인데도 자발적으로 일기의 숲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잘 아시다시피, 일기는 개인의 내밀한 삶을 기록한 역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그런 매력에 끌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싫어했던 일기를 펼치고 삶의 요모조모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일기 쓰기’는 그 자체가 글쓰기지만, ‘글쓰기’에 조력하는 역할도 합니다. 쓰고 싶은 글의 씨앗이 되어주기도 하고, 쓰고 싶은 글에 대한 동경과 고뇌를 표현하는 장(場)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 바버라 애버크롬비는 이런 면에서 일기장에 꽤 의존을 하는 편입니다.
“나는 공황장애에 빠지면 먼저 일기장을, 그 다음엔 계산기를 찾는다. 일기장에는 극심한 자기 연민을 드러내며 앞날의 실패에 대한 격렬한 저주를 쏟아 붓는다. 그런 다음, 몇 가지 목표를 적는다.
계산기로는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몇 쪽의 글을 써야 하며 며칠이 걸릴 것인지를 계산한다. 이런 일은 수없이 반복된다.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중
그렇습니다. 작가들이나, 작가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 할 것 없이 일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창구인 것입니다. 일기의 수많은 주제 중에,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해 기술할 수 있습니다. 글이 잘 안 써지는 상태를 그대로 기록할 수도 있고, 나의 글쓰기가 어디로 향하면 좋을지 소망도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더 나아지기를 갈망하고 있다면, 글쓰기 일기를 써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글쓰기를 주제로 삼아 토로하다보면,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그 일기에 쓴 많은 소망들이 실현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5년 전에 저의 노트를 채웠던 글쓰기 일기들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녹아 있습니다.
2013년의 일기
2013. 7. 30.
그저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끊임없이 읽고 지식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내 키가 한 자나 더 자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유용한 믿음 일까.
쓰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나의 삶은 갈피없이 흔들리는데 대체 독서에 대한 믿음이 날 붙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날이 있는 법입니다. 글도 잘 안 써지고, 하는 일에 공허함을 느끼는 것 말입니다. 그런 심정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게 되면, 좀 시원하기도 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의 언급을 통해 훗날 그 일이 있을 때 탈출하는 것이 좀 더 용이해집니다.
2013. 8. 5.
글쓰기를 연마함에 있어 첫 번째 목표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이야기로 구현하여 언제든 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쓰고자 하는 것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거창하고 고난이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일로 보는 관점에서, 자리를 잡고 앉으면 생산해낼 수 있는 일상의 습관 내지 노동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쓰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빈 화면과 키보드를 번갈아 보며 멀뚱멀뚱한 상태로 보내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에서 쉴 새 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오게 하자는 것이다. 이야기가 마치 내 몸 속을 흐르는 피인 양, 손가락 끝을 따면 나오는 피처럼 그렇게 내 안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 멋지지 않은가.(중략)
내가 글쓰기를 통해 닿고 싶은 경지를 쓰는 일은 좋은 ‘글쓰기 일기’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2013. 8. 23.
읽는 것이 생활이 되자 이야기를 일정한 모판에 짜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는 내 손을 통해 문자화되는 동안 계속 자라났고, 흔들리기도 했다. 이야기는 살아있었고 기록되는 동안 발육했고 진화했다.
폴 오스터와 필립로스를 읽는 동안 난 소설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인생을 아름다운 무늬로 채색하는 것이 바로 글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의 지평을 넓혔다.
난 그들이 제공하는 레펠에 몸을 의지한 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암벽 너머로 몸을 천천히 옮겨갔다. 그것은 나의 세계에 우뚝 솟아 있는 암벽을 등반하는 여정이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촉을 발과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고, 더 깊은 곳, 더 넓은 곳,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 쓰기’에 꽤 진보가 있었나봅니다. 설렘과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이런 일기만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후에도 ‘글쓰기 일기’는 온탕과 냉탕을 오갑니다.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다 잡은 것 같아도, 어느 새 손에서 빠져 나가는.
가끔씩 써 온 글쓰기 일기지만, 시간이 지나고 들춰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나의 생각이, 이때 이미 시작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조종간을 잡고 미숙한 비행을 하는 파일럿이 자신이 현재 지나는 상공의 좌표를 관제탑으로 송출합니다. 어쩌면 글쓰기 일기를 쓰는 일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훗날 글쓰기의 상공을 어떤 경로로 거쳐왔는지 글쓰기 일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유용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