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flickr, NickDuBb>
오늘날 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근대 사회가 도래한 이후 그들은 온갖 분야에 '프로'의 깃발을 내걸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도와왔다. 전문가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을 확실하게 풀어냈고 방대한 지식을 축적해 근대 사회의 토대를 구축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그들의 세계는 너무 편협해졌다. 전문가들은 서로의 실수를 눈감아줬고 막대한 지식 격차를 이용해 보통 사람들을 눈 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여전히 자부심으로 뭉친 이타적 지식 집단인지를 의심해봐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필연적으로 고착된다. 전문가는 자신에 대한 일반인의 의존이 항구적이며 맹목적이길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무지한 존재로 남길 원한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방법은 자신의 분야를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금융 전문가는 전체 내용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갈기 갈기 상품을 쪼개며 의사와 법관들은 모국어로 써도 해석할 수 없는 전문 용어로 자신의 보고서를 채운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우리가 백기 투항을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절대 넘볼 수 없는 벽을 만드는 것. 침범의 의지를 스스로 꺽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수성 전략이다.
전문가 서비스의 지불 수단은 오직 화폐뿐이다. 이 말은 우리가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했을 때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뭐 이리 당연한 말을 하냐고? 의사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애를 낳을 땐 산파로 소문난 동네 아줌마의 도움을 받았고 감기에 걸리면 들과 산에서 구한 약초로 병을 다스렸다. 그런데 요즘은? 의사가 진찰을 하고 주사를 놓고 처방전을 써준다. 과거엔 상호 부조나 자연의 혜택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진료비와 주사비, 약 값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전문가 서비스 사회에서 빈부의 차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기본권의 획득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빈부의 차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를 살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나지 않는다. 좋은 의료를, 교육을, 주거 환경을, 즉 삶의 기본권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타나는 것이다. 억울한가?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우리에게 그런 힘은 없다. 한때는 우리도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맹목적으로 전문가에게 위임한 결과 우리는 완전히 불구가 됐고, 이로 인해 더더욱 전문가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난 전문가들은 이제 필요 자체를 정의함으로써 권력을 영속화 한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스트레스 관리, 입시 상담, 네일 아트, 취미와 여행 추천, 심지어 청소, 이사, 정리 전문가를 필요로 했는가? 우리도 모르는 새에 우리는 너무 바보가 되어 정리도 청소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심지어 내가 뭘 먹고 싶은지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지 조차 모르는 인간이 된 것이다. 전문가 사회는 우리 대신 우리의 필요를 정의하며 나아가 그 필요를 욕구로 가장해 인간을 순전한 욕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 잘 나가는 상품들이 소비자의 필요(needs)에 호소하지만 더 위대한 사치품들은 욕망(wants)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나 전문가 사회의 가장 끔찍한 점은 그것이 가진 정치적 함의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말한다.
전문 서비스의 일방적 공급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반민주적인 지도자를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준비시키는 일이 훨씬 용이하게 마련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가들은 복잡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정의해 그것으로부터 일반인들의 눈을 돌리게 만든다. 사안을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해결해 줄 전문가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 함으로써 자발적인 노예가 된다. 자신을 이끌어줄 강력한 독재자를 열렬히 환영하는 것이다.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21세기 투명 사회의 선진 시민에게 이같은 상황은 얼핏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 세계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2007년 12월 19일, 경제 전문가라는 기업의 CEO를 대통령으로 뽑은 적이 있지 않은가.